최근 일요일마다 챙겨 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SBS의 <영웅호걸>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청춘불패> 등의 ‘도전’ 형식을 가미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게다가 이휘재, 노홍철, 신봉선 등의 출연으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약점도 떠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호걸에는 커다란 미덕이 있다. 바로 제작진의 뛰어난 캐릭터 발굴, 창조 능력이다. 이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새롭게 출발한 <런닝맨>, <오늘을 즐겨라>에 비해 훨씬 더 기다려지는 일요예능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방송분에서는 6개월 이후에 있을 대국민 인기검증을 대비한 미션의 두 번째로 신입사원 면접 편이 방송되었다. 유명 헤드헌터들을 섭외하여 12명의 영웅호걸 멤버들에게 실제 신입사원 채용 과정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모의 면접을 보고, 협동력을 테스트하는 모의 바이어 미팅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특한 캐릭터가 만드는 황당한 시추에이션들은 여전히 많은 웃음을 주었다.

‘무서운 유인나’라는 캐릭터로 영웅호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신예 유인나는 바이어의 미션을 수행하는 도중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고, ‘모태다혈’ 서인영도 면접 과정에 면접관의 질문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신입사원 면접을 보기엔 나이가 많은 노사연과 대학에 입학도 하지 않은 나이의 아이유, 지연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재미도 압권이었다. 그동안 기대에 비해 아쉬운 모습이었던 정가은은 이번 회에서 잘 구성된 자기소개서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곧 취업 시장에 내던져질 형편인 필자는 영웅호걸 멤버들이 면접을 보는 모습을 그저 ‘예능’으로 즐기기만 할 순 없었다. 아무리 예능을 다큐로 보지 말아야 한다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 채용 과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여유롭게’ 면접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예능적인 면접 태도를 보여 준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자꾸 실제의 암담한 현실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턴 자소서라도 몇 날 밤낮을 고민해야 완성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가 고작 한시간만에 완성되고, 이력서에도 과대 포장한 사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입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다. 텔레비전 안에서는 간단한 자기소개만 할 줄 알아도 외국어 실력을 ‘중’으로 기입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저 정도의 외국어 실력은 아예 안 쓰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일이다.

출연자들은 압박면접 과정에서 이런 저런 질문에 움찔하며 진땀을 흘렸지만, 평범한 대학생의 눈으로 본 그 장면은 매우 온화한 장면일 뿐이었다. 실제 기업 입사 시의 압박면접에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될 정도로, 지원자와 관련된 온갖 정보들을 다 헤집어 놓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 이런 압박면접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대답할 수 있는 훈련을 미리 한다는 이유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취업 동아리들은 유사한 압박면접을 모의로 진행하기도 한다. 모의면접 때마다 누구든 한 명은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게 목표인 동아리도 있다.

이러한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끼게 해 준 가장 결정적이었던 장면은 출연자들이 이력서에 적은 ‘희망연봉’을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억대 연봉’을 희망했으며, 연봉 란을 비워두었던 서인영도 ‘홍수아보다는 많이 받고 싶다며’ 2억 5천을 불렀다. 예능의 판타지나 재미를 위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실실 웃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컸다. 우리는 소위 ‘88만원 세대’로 명명되기까지 한 슬픈 세대이니까 말이다.




앞서 말했듯, 영웅호걸 이번 회가 재미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실을 반영 안 한 제작진을 질타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예능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 이상한 경험을 겪은 한 사람의 푸념 정도로 여겨도 될 것 같다. 다음 방송에는 신입사원 면접 2편이 방송된다니, TV로 전편을 보는 대신 인터넷에 올라오는 재밌는 부분만 편집한 플짤이나 열심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