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무식한 대학생
많은 지식인들은 대학생들에게 ‘무식하다’는 말을 한다. 근현대사도 모르고, 정치의식도 없고, 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는 무늬만 대학생이라고들 한다. 나는 실제로 내가 그러한 류의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정한 학문에 관심이 있어 전공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때까지 학과 공부를 한 이유는 그저 좋은 대학에 들어가 학벌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나를 위치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거 할 시간에 공부하는 게 낫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했고, 신문은 논술에 도움이 된다는 방법으로만 읽었다.
과연 나는 무식한 대학교 새내기였다.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삼았으면서도, 1학년 첫 학기 때 들은 정치나 언론에 대한 수업을 정확하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사전 지식이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토론 수업에서, 어떤 술자리에서,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위 고학번 이미지로 대표되는 대학 선배라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도 나는 머리아프기만 했고, 이해되지 않아서 열등감이 생기곤 했다. 난 왜 이렇게 무식할까 하는 그런 한탄 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mssrlove/150048998099)
언제나 채워지지 않았던 지식
정치에 대한 무관심, 사회에 대한 무관심, 일상적 스펙 쌓기가 정치적 참여와 동등한 위치에서의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팽배한 세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내가 나에게 자부할 수 있는 건, 나는 나의 무식함에 대해서 쿨한 척하며 무식하면 어떠냐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가 어쨌든 나의 새내기 적 삶의 목표는 ‘학점 4.0 돌파’가 아닌 ‘사회 문제에 대한 내 입장 찾기’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1학년 때는 학과의 학회에 가입하였고, 2학년이 되고 나서는 학내외에 명사들의 강연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결국 지금의 고함 활동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책을 많이는 못 읽을지언정, 언제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 한 권쯤은 손에, 가방에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1학년 안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사회 문제에 대한 나만의 입장 찾기’는 아직도 달성되지 못한 저 멀리의 꿈으로만 남아 있다. 어느새 3학년이 되었고, 두 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학점도 다 채우게 되는 나름의 ‘고학년’의 신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나 스스로가 무식하게만 느껴진다. 언제나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새로운 사상이나 의견에 대해 듣는 것은 그 자체로서 즐거움이면서 고통이었다. 새로운 정보는 나 스스로의 절대적 지식수준이 높아짐에 대한 만족감을 주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것들을 또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하여 나의 상대적 지식수준에 대한 자존감을 한없이 떨어뜨리기도 했다.
나는 배우면 배울수록 헷갈리는데
정말 솔직히 말해, 나는 배우면 배울수록 헷갈린다. 알았다는 느낌보다는, 생각해야 할 거리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문제들만 머릿속에 쌓여나가곤 한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나의 의견을 최대한 정리해서 말하고 있는 일들이 (심지어 지금 쓰는 이 글까지도)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의 원인으로 기능해버리곤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매우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사람들의 말하기에서 언제나 존경이나 부러움 같은 것들을 느꼈다. 지금은 부러움 뒤에 물음표가 붙는다. 지금 저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생각은 정말로 한 방향만을 향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후에 고민이 당연히 존재하는 건지를 상상해 보게 된다.
이번 학기에 나는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수업에서 교수님들은 각각의 입장에 맞추어 경제 현상을 해석하고 그것을 매우 확신하며 이야기하고는 한다. ‘화폐수량설’과 같은 논쟁적인 논의에 대해서도 상대의 입장은 틀린 것이 되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기도 한다. 하루에 동시에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커다란 혼란에 빠져서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강단 위의 선생님들도, 술자리의 선배들도, 온라인 속의 많은 논객들도 사실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평소에 다른 기사나 언어생활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사실은 ‘아는 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스스로 헷갈리는 많은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 채,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거나 정확한 정보인 것처럼 무의식중에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 건지 또 스스로 헷갈리고 있다.
결국 공부는 ‘아는 척’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말 공부는 ‘아는 척’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인가 혹은 공부를 하면 알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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