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들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도 우리의 이러한 믿음에 보탬을 준다.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기록영화(記錄映畵)라고도 불리며 사실을 기록하려고 시도한 논픽션 형태의 시각적인 작품.] 사실을 기록하려고 시도한 논픽션(non-fiction). 이는 픽션(fiction)에 대응하는 말로서 사실의 기록에 입각하여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1일에 방영된 MBC스페셜 1부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라는 TV 다큐멘터리만 보더라도 ‘과연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신뢰할 만 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TV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중설득을 통한 교정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자연 관찰기나 여행기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TV에서 사실적인 내용을 담은 필름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크게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와 형식주의적, 주관적 다큐멘터리로 나뉘는데 KBS의 ‘다큐멘터리 3일’이나 MBC의 ‘아마존의 눈물’이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최근 여론의 중심에 놓여있는 MBC스페셜 1부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는 주관적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하는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 재료를 배열하고 구조화한다.‘타블로, 스탠퍼드 가다’에서 상황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인터뷰이를 등장시킨 이유 역시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함인데 고맙게도 이번 방송에서 드러난 허점들과 오류 등을 통해 이러한 연출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MBC스페셜 제작진은 시청자게시판에 공지 글을 올려 “지난 10월 1일 방송된 MBC스페셜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 방송 중 타블로가 스탠퍼드 대학교의 영문과를 방문했을 때 마주친 주디 캔델은 영문과 교수가 아닌 스탠퍼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관리자(administrator)이기에 이를 정정한다.”고 자막 오류를 정정하고 성적증명서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주디 캔델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며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타진요 상진세에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데 대체 'MBC 스페셜'서는 교수와 직원조차 구분을 못해 오류를 내보내냐. 그리고 프린터 오류는 뭐야. 이거 정말 황당하던데 좀 더 치밀하게 자료 준비를 하고 방송 찍고 방송을 해야 되는데 이건 뭐 휴먼다큐를 찍고 왔으니"라는 한 네티즌의 비판은 이번 방송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2001년 스탠퍼드 창작문학상 1등 수상과 최우수 졸업생 졸업장 진위 확인 및 2001년 학사 2002년 석사 학위증 진위 확인이 없었다는 점, 같은 과 동창생 등이 등장하지 않았고 지도교수도 만나지 않았다는 점, 입학 과정을 스탠퍼드에 묻는 게 아니라 서울국제학교 진학상담 교사 프레더릭 슈나이더에게 물었다는 점, 그리고 성적표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며 MBC스페셜이 객관적으로 학력을 입증하려는 노력보다는, 타블로가 구상한 시나리오와 동선에 따라 진행된 공정하지 못한 방송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네티즌들의 비판처럼 MBC스페셜의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 다큐멘터리는 물론이고 영상을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순수한 의미에서의 객관은 상실된다고 볼 수 있다. 제작 전에 촬영 계획을 세우고 카메라 앵글로 좋은 위치를 찾고 편집 작업을 하는 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감독의 의도가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한 형식주의적, 주관적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에서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을 보는 도중 이를 곧잘 망각한다. 최근 예능계의 트렌드인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제작진이 설정한 의도에 맞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에서 출연자들과 함께 헤매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중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러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어느 정도 연기를 하고 있고 작가가 만든 최소한의 대본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영상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영상을 보는 도중엔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필자는 영상물의 객관성에 대한 이러한 무의식들이 이번 MBC스페셜 방송에 대한 비난 여론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인식이 주관적 다큐멘터리에까지 미쳤으니 앞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적 현장을 기록했다는 사실로 인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기 보다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면 제작자들은 우리의 생각을 쉽게 훔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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