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18분.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지하철과 버스 중 무엇을 탈까 고민하다 버스에 오른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수많은 간판들이 자기를 좀 봐달라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후 2시 43분.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홍대로 향한다.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나는 역시나 버스에 오른다. 한적하게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빠져보려 하지만 창밖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간판들이 사색의 여유를 빼앗아간다.

오후 4시 9분. 친구들을 만나서 홍대의 번화한 거리를 걷다보니 다시 한 번 어지러이 걸려있는 간판들을 마주한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다. 그것들을 애써 무시한 채 한 카페에 들어가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간판들은 친구의 등 너머로 여전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번에는 현수막까지 가세한 모양이다.

저녁 6시 22분. 카페를 나서는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조명으로 한껏 더 화려해진 모습의 ‘그것’이다. 설상가상 바닥에는 자극적인 광고물과 전단지들까지 늘어져있다. 마치 누가 얼마만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더 사로잡을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하다. 바로 그 때 감각적인 모양과 화려한 색깔, 눈부신 조명을 덧입은 간판이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움직이기까지 하는 그것은 네온사인이다. 색색깔의 반짝이는 문구와 그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밤 10시 11분. 회의를 마치고 한껏 피곤해진 나는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고민을 한다. 지하철이냐, 버스냐. 버스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지각색의 간판과 현수막, 네온사인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하는 수 없이 지하철에 오른다.

밤 10시 20분. 지하철이라고 광고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 내의 광고는 그나마 봐줄만 하다. 그러나 광고의 형태와 종류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가는 모습은 마음 한 쪽을 불편하게 한다. 스크린도어 광고, 와이드 컬러 조명 광고, 프로모션 광고, 래핑광고, 쇼케이스 광고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밤 10시 29분. 지하철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눈을 살짝 감아보려 하는데 난데없이 맞은 편 유리를 통해서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저런 곳에서까지 광고가 쏟아져 나오다니. 광고가 점령하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인다. 


(출처: http://wonsoon.com/2176)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광고 통에 어지러운 하루이다. 너무나도 많은 광고 속에서 시민들의 눈은 쉴 틈이 없다. 수많은 간판과 현수막, 네온사인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 광고에 시간을 뺏기고 생각을 뺏긴다. 우리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사색에 빠질 여유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대중교통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행태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국 런던 지하철의 경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책 등의 문화광고 외의 다른 광고물은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정된 곳에만 광고를 하게 하거나 조금 더 가지런히 게시를 한다면 시민들은 훨씬 쾌적한 기분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얼마 전 G20을 할 때에도 여기 저기 걸려있는 현수막들이 참 눈에 거슬렸다. 웬만한 빌딩엔 걸려있었던 현수막의 상당수는 불법 광고물이었는데 이는 심지어 정부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불법 광고물을 단속해도 모자를 판에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가담하고 있으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현수막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제각각인 간판과 네온사인들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단정하게 정돈된 거리를 걸어 다닐 권리가 있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간판과 네온사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얼마 전 강남구청 본관에서는 강남구민이 뽑은 아름다운 간판 수상작 전시회가 열렸다. 강남구는 옥외광고물의 수준향상 및 바람직한 광고문화 정착을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이 행사를 실시하고 있고 올해에는 삼성동 코엑스주변과 강남대로, 압구정로를 대상으로 간판개선사업을 벌인 바 있다. 이는 무분별하게 설치된 불법간판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례가 아닐까.

우리도 모르게 빼앗겨버린 권리를 찾으려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태껏 한 번도 광고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오늘 집에 가는 길에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길 바란다. 얼마나 많은 광고물들이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