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학생들이 세계적인 권위의 ‘벨룩스 건축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학생으로서는 최초였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커다란 개가였다.

벨룩스 건축 공모전 대상 수상팀 (박영국, 최진규, 김대현, 김원일)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들의 작업실 입구에는 ‘미용실(美用室)’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문구를 되뇌며 안으로 들어섰다. 작업실은 남자들만 모여서 먹고 자고 작업하는 곳답게 어지러웠으나 금세 자리를 만들어줬다.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한다. 한양대학교 정문 앞의 한 낡은 건물 2층에는 서툴지만 당당한 문패가 걸려있다.>
 

한 달 사이에 인터뷰에는 이골이 난듯 여유 있게 차를 권하더니 ‘고함20’에 대해서 묻기까지 했다. 자고로 인터뷰어에 대해 공부한 인터뷰이를 만날 때 가장 긴장 되기 마련이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문득 공모전에 대한 것보다 그들 자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장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꿈’ 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보통 이런 건 마지막에 하던데.” 라며 박영국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졸업 후에 남들처럼 취직하지는 않고 우리 작업실인 ‘미용실’을 더 크게 운영해 볼 생각입니다. ‘미용실’(美用室)은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곳이라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이에요. 우리는 실용적이면서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 뭉쳤습니다. 누구든 우리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플랫폼의 형태를 생각중이예요.”

이들이 수상한 벨룩스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은 페이퍼 아키텍트 (실제 지을 건물보다는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건축 아이디어를 도면상으로 시도하는 건축 용어) 이다. 이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어려움에 대해서 김원일씨가 마치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건축은 남의 돈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리적이고 경제적인 활동입니다. 돈 대주는 사람을 설득해야 해서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설득 할 수 없다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꼭 해낼 거예요.”

무일푼의 대학생인 이들에게는 당장 이루기 힘든 꿈이다. 실력을 갖추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5년 후’ 라는 단서를 붙이는 그들의 꿈이 부실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스스로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살고 싶다는 최진규씨도 지금의 믿음과 바람이 꺾이지 않기를 바라며 덧붙였다.

“ 학교에서 배울 때는 건축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잖아요? 우리는 큰 회사에 들어가 나이가 들면서 꿈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말랑말랑하게 살자’ 라는 다짐을 하곤 해요.”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개성을 보여주고 싶은 미용실팀. 왼쪽부터 박영국, 최진규, 김대현, 김원일씨>


각자의 꿈을 물었지만 이들의 꿈은 이미 서로 맞닿아 있었다. 모두의 꿈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직업이 되다보니 함께 둥지를 틀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 이들의 이 꿈을 ‘동네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으리으리하고 현학적인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네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고 세세한 것들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듯 같은 꿈을 꾸지만 자기 주관이 확고하다보니 작품을 제작할 때 싸울 일도 많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일수도 있는 이러한 시스템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 가장 나이가 많은 김원일씨의 의견을 물어봤다.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합의를 봐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엄청 싸우죠. 건드리면 안 될 부분 같은 건 생각 안 해요. 앙금이 남지 않을 때까지 격렬하게 싸우고 풀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기 때문에 또 기본적으로는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감정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상대방에게 내가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쁘다거나 삐졌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요. 왜 가족들끼리 기분 상했을 때도 그렇잖아요.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어쩔 수 없이 풀게 되는데 괜히 감정 상한 모습 보이면 나만 손해예요.“

이렇게 싸운 것이 효과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 담당 교수인 토미이 마사노리(62) 교수가 보자마자 수상을 직감했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 나온 것이다. 미용실 팀도 어느 정도 수상을 기대하고 프랑스 파리를 떠났다. 경쟁자라 생각한 작품이 있었냐는 질문에 서로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도 다 좋았어요. 우리가 상을 안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죠. 세계 각지에서 참가한 20대의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3일간 워크샵을 같이 했어요.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포부에 대해서도 말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 학생들도 다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 묻어난 나름대로의 시각들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어요.

예를 들어 빙판의 두께에 따라서 삶이 좌지우지 되는 알래스카에서 온 팀이 있었어요. 그들은 풍선으로 햇빛을 받아서 충전 된 빛을 밤에 비춰요. 그러면 그 빛을 받은 얼음이 두께에 따라 스스로 여러 가지 색을 내게 되는 거죠. 그런 게 정말 필요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해요.

해가 비추는 시간에 따라 그림이 바뀌는 작품도 있었는데 공감이 많이 갔어요. 전 비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고 싶었거든요. 다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박영국씨의 말에 김원일씨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말했다.

“전 저희 팀이 받을 줄 알았어요. 물론 우리한테 유리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공모전이라는 게 한 끝 차이인데 우리는 네 명이나 되다 보니까 건축에서 꼭 들어가야 할 부분들이 골고루 잘 표현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작품이 나오고 나서 상 탈 줄은 알았지만 막상 됐다고 연락 오고 나니까 살짝 소심해졌어요”

이런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그들 역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여기까지 왔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김원일씨가 혁명가 스타일이라 많이 싸웠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 너무 강경하게 주장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게 아닌가 해서 걱정했거든요. 김원일씨는 그러면 우리가 실천차면 된다고 하더군요. 살면서 증명하고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냐구요. 물론 현실적인 제약은 많지요. 하지만 우리도 젊다고 생각하고 도전하고 있고 실패할 것도 사실 생각하고 있어요.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건객이라고 칭하는 혁명가 김원일씨도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가 흔히 목숨 거는 ‘스펙’이란 제도권에 들어갈 때만 필요한 것이죠 그 이후에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성세대가 정해진 가치나 기준에 끌려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세상엔 가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데 말이죠. 스스로 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나아가 다른 가치들에 대해서 도전을 많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뜻이 분명하고 신념으로 가득 찬 네 명의 동네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사실 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들의 앞길이 험난할 것 같다는 애늙은이 같은 걱정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나도 저들처럼 꿈을 찾아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있다. 학교생활이 권태롭고 지겨워서 밖으로 뛰쳐나가 온갖 대외 활동을 통해 ‘스펙’을 쌓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그들은 언젠가 꼭 한 번은 나와 같은 자괴감에 휩싸일 것이다. 그 때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줬으면 한다.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난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동네 건축가가 되겠다는 그들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면서도 부러워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고민을 남보다 먼저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