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상업영화가 보여주는 화면들은 시공간적으로 매우 비현실적이고 압축적이다. 몇 십 년, 심지어는 몇 억년에 이르는 시간을 단순한 점프 컷으로 처리해버리고, 각기 다른 장소에 위치한 두 인물이 동시에 행하는 일들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것과 같은 영화적 문법에 관객들은 매우 익숙해져 있다. 그와 동시에 어려서부터 TV와 영화가 주는 스피디한 재미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현실과 같은 시,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가수의 3분짜리 무대영상마저도 지루하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그러한 의미에서 어제(8일) 개봉한 할리우드산 스릴러인 <베리드 Buried>(2010)는 참 흥미로운 작업물이다. 95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관 속에 묻힌 한 남자가 겪는 그 시간의 무게를 관객들이 거의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영화다. 길이 2미터의 좁은 관 속이라는 공간 속만을 비추는 카메라를 따라가는 것도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다.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사회적 메시지, 그것이 주는 씁쓸한 뒷맛이 보너스라면 보너스.




지루할 틈 없게 만드는 관 속의 사투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트럭 운전사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 분).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눈을 떠보니 그는 낡은 관 속에 묻혀 있다. 그와 함께 묻혀 있는 라이터, 칼, 전등, 연필, 핸드폰 등 몇 가지 도구를 통해 관을 탈출하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사실상 좁은 관 속에서만 전개되는 영화에서 SF영화 급의 속도감을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베리드>는 보란 듯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모든 조명이 연기하고 있는 배우의 손에 의해서 장치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잠시 가만히 누워있을 때 화면은 완벽한 어둠을 취하며 다음 내러티브로 넘어갈 준비를 취한다. 잊힐 만하면 극장 전체를 뒤덮는 어둠은 꽤나 새로운 공포감을 현실화한다. 특히 영화 시작과 함께 주인공이 라이터를 찾아내 켜기 전까지 수 분 동안 암전이 이어지며 인물의 거친 호흡소리만이 귀를 감싸올 때는 소름마저 느껴진다.

매우 좁은 공간을 애초에 택한 덕에 오히려 주인공과 관을 비추는 시선, 각도는 매우 다양하다. 폴의 힘겨운 움직임과 더불어 카메라도 다양한 각도를 통해 관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공간적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 관 속에 주어진 라이터를 통한 주홍빛 조명, 한 형광막대기 속의 형광물질을 통한 초록빛 조명, 손전등의 붉은색 조명도 관이라는 환경 하에서 영화적 미를 한층 더해준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장치인 핸드폰은 주인공 폴이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폴이 핸드폰을 통해 가족들, 이웃, FBI, 협박범 등과 통화하면서 극적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축적된다. 극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한 통화 장면들에서 상대방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의 차가운 목소리만이 귓가에 울린다.




가볍지 않은 풍자가 만들어내는 유머와 메시지

같은 스릴러 장르이지만 <베리드>는 최근 충무로 트렌드에 의해 우후죽순 제작되고 있는 한국 스릴러와는 다른 미덕을 지닌다. <악마를 보았다>로 대표되는 유혈이 낭자한 한국표 스릴러들과는 달리, <베리드>에는 관객의 역함을 자극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도 그럴 것이 작은 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잔혹성에 의해 주인공이 신체적 가해를 입을 확률이 자해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한 0%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 한계로 인한 범죄형 인간의 빈자리를 <베리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류 공통의 감정과 현실 사회의 잔인함이라는 신선한 코드로 채워낸다. 자신을 관 속에 가둔 테러범이 살아있는지, 자신을 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미국 관계자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삶을 향해 발악하는 폴에게 관객들은 어느새 동화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성되는 서스펜스는 극대화된다. 그가 관 밖으로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지, 혹은 그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지에 대해 관객들도 폴이 가진 정보를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은 관을 탈출하기 위해 연락 가능한 모든 관계 기관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들의 사무적인 음성들로 인해 폴, 그리고 관객들은 함께 분노하게 된다. 하찮은 트럭 운전기사 한 명이 사느냐 죽느냐의 경계에 있든 말든, 바깥세상이 꽤나 평온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러한 분을 부추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들이 나오는 훈훈한 스토리가 보여주지 않는 냉혹한 진짜 현실을 목격하는 불편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핸드폰을 통해 전개되는 장면들에서 현실 사회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관객들에게 유머가 되기도 하고, 불편함을 주기도 하며, 때론 폴을 찌르는 칼날인 양 느껴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베리드>는 다시 한 번 한국산 스릴러들과의 차별성이 드러낸다. 한국형 스릴러가 <추격자> 이후 ‘인간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데 매달려 사이코패스 관련 담론들을 수없이 쏟아낸 데 비해, <베리드>는 사실상 인간보다 더 무서운 사회 구조의 잔혹성에 대해 경고를 보낸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난 이후에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 준다.




산소호흡기를 들고 영화관에 들어가라는 ‘겁을 주는’ 마케팅을 배급사가 펼치고 있지만, 사실상 별로 잔인한 장면이 없어 심약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는 스릴러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씁쓸함, 답답함, 찝찝함 같은 감정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전반적으로 잘 빠진 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