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당선! 기뻤지만, 쉽게 바뀌진 않더라'

 

최영석(22) 씨는 요즘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청소년 인권 운동을 병행하느라 항상 잠이 부족하다고 했다. 월요일 오전 어렵사리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학교(숭실대 사학과) 생활할 때보다 휴학생인 지금이 몇 배는 더 바쁘다고 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면서, 왁스를 오랜만에 바르고 왔다면서 쑥스럽게 말했다. 잠이 부족하다기에 깔끔하게 하고 나 올 줄 몰랐는데 예상외로 신경을 많이 써줬다. 최영석 씨는 대화를 나눌수록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완숙미가 느껴졌다. 2008년 수능을 앞두고도 청소년인권 관련 집회에 나갈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청소년들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 이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최영석 씨는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었을 때 이러한 청소년 관련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할 때부터 드러난 부족한 식견에 다소 회의를 하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다

 

▶현재 휴학 중(숭실대 사학과)이라고 들었어요. 공부 때문은 아닌 것 같고, 활동에 더 집중하려고 휴학한 건가요?

  영석: 아! 그건 아니고요, 군대 문제 때문에 휴학했어요.

 

▶‘아수나로’ 청소년 행동단체는 영석 씨처럼 대학생만 활동하는 곳인가요?

  영석: 아니요, 저 같은 경우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활동했어요. 아수나로는 모든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어 행동하는 단체에요.

 

▶얼마 전 언론에서 청소년인권 행동 ‘아수나로’에 대한 기사를 쓴 것을 봤어요. 사전적 의미와 '아수나로'의 뜻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무슨 뜻이에요?

  영석 : 기사들을 보니 아수나로의 의미는 '불멸·불사'(일본어 뜻)를 뜻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쩜 우리도 모르고 있던 의미를 그리 잘 찾아내셨는지. 실제 아수나로의 어원은 일본 중견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소설 주인공인 한 중학생이 기성세대로부터 독립을 꿈꾸면서 인터넷에서 만든 공동체 이름이 '아수나로'라고 하더라고요. 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학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봤는데 절판된 지 한 10년쯤 됐다고 하네요(웃음).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영석 : "학생인권 위한 몸부림인데 징계라니"

'어? 이게 뭐지?'인터넷을 켰는데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어요.
기사를 본 순간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죠. 저 멀리 창원에서 학생회 부회장이 학생 처우를 개선하라며 학내 집회를 계획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었다는 내용이에요. 저는 그것을 보고 '회개'했어요.

 

▶회개(?)하시기 전의 영석 씨는 어떤 고등학생이었어요?

  영석: 사실 저 같은 경우는 학교나 교육 체제에 대한 불만이 가장 없는 편에 속해야 정상일 것 같아요. 저만 학교에서 모의고사 400점을 넘겼어요. 학교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았고요. 다만, 한 가지 불만이었던 것은 정규수업을 마친 뒤 거의 4시간 가까이 실시하는 기만적 야간자율학습이에요. 방학기간에도 보충학습 명목으로 강제수업을 했으니, 내가 학교에 강탈당한 시간은 3년 1,100일 동안 거의 300일에 달하죠. 한이 쌓이기에는 충분한 분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2년 반을 지내다 보니 '수능만 치르면 좀 나아지려나?‘ 미래에 대한 꿈을 생각할 틈조차 없었어요.

 

진보사회에 걸맞은 행동



▶12월 10일 인권위가 주는 상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인권활동가로서 어떤 느낌이였나요?

 영석 : 수상을 거부하겠다고 맨 처음 선언했던 사람이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친구라는 것은 아마 몰랐을 거에요(웃음). 마침 같은 날에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있었죠. 수상자 중 한 명이었던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인권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자국민들에게 수상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했죠. 현상은 조금 다르지만, 나는 이게 이번 인권위 수상 거부와 묘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현 정권에 이르러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각종 인권침해 사태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인권위 위원장에 인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인권위는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이번 중국의 태도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청소년인권이 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석 : '어린 왕자'라는 책 아시죠? 책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요.'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하지만 기성세대를 보세요. 청소년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죠. 분명히 자신들도 청소년기가 있었는데 '청소년에게 무슨 인권이냐?'라는 형편없는 인권의식을 자랑으로 알고 있죠. 하지만,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는 해요. 그들의 대부분이 인권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또 자신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으며 살아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문제는 자신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했다고 뒷사람들에게도 인권을 보장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기심과 그것이 되풀이되고 있는 거죠. 우리의 청소년인권운동은 그 악순환을 끊는 것이에요. 청소년인권이 보장되어야 성인의 인권도 보장되는 것이고, 악순환은 선순환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뭐가 있나요?

  영석 : 활동은 2008년 7월부터 했으니 벌써 2년이 넘었어요. 미래에 활동할 것들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겠지만. 그간 한 것들은 사실 많았지만, 성과랄 것은 많지 않아요. 가장 큰 성과라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통과 정도? 10년 전만 하더라도 꿈도 못 꿨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조례가 공포되는 장면까지 왔죠. 비록 조례가 너무 관제 성(官制 性)이 강하고 급하게 제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도 온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는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영석 : 저는 '가능성'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청소년인권운동은 '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죠. 막말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 독립할 '가능성'을 보고 독립운동 했을까요? 저는 사실 살아서 청소년인권운동의 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청소년 인권’ 하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책 좀 추천해주세요!

 영석 : 배경내라는 사람이 쓴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이 최근까지 청소년인권을 다룬 거의 유일한 저서였어요. 그래서 우리 아수나로에서는 2009년 4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이라는 책을 출판했고요. 최소한의 인권감수성만 있다면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꼭 읽어보기 바래요.

 

▶영석 씨는 청소년에게 요구할 것이 있을까요?

 영석 : 방금 전 '1박2일'을 보고 왔어요. 강호동과 야구선수 양준혁이 대화하는데 인상적인 말이 나왔더라고요.
"선배들한테 하도 자주 맞으니까, 안 맞는 날이 있으면 오히려 불안하더라."
일상적인 인권 탄압 속에 길든 청소년은 결국 스스로 인권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요. 스스로의 인권을 찾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꿈이 뭐에요?

 영석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는 꿈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교육을 빙자한 문제풀이를 빌미로 거의 항상 학교에 있어야 했는데 대체 무슨 꿈을 꿀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지금의 활동은 정말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 되었죠. 청소년인권운동은 3보만 걸어도 배울 것이 넘쳐나요. 저는 이 활동을 평생 놓지 않을 계획이에요. 그것이야말로 짧게는 300일, 길게는 18년 동안 빼앗겨왔던 삶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