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에 진행된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선거에서는 꽤나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오랜 기간 나름의 정통성을 토대로 총여학생회를 이끌어온 여성주의 계열의 선본 퀘스쳐닝(Questioning)이 낙선한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학생들은 졸업앨범 촬영 시 메이크업 지원 등 여학생 복지 공약과 양성 평등 가치관을 제시한 비여성주의 선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떻게 보면 연세대 내의 페미니즘 운동이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간 대학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조롱의 시선이 많았던 데다가, ‘총여학생회’라는 기반을 상실함으로써 활동력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정작 낙선한 당사자인 퀘스쳐닝 선본은 담담하게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플랜카드를 통해 낙선 후에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여성주의 활동들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알렸다. 이제는 선본이 아닌 동아리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퀘스쳐닝의 경은 씨와 화정 씨를 만나 선거 과정에서의 에피소드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더불어 대학 내의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허심탄회하게 나누어 보았다.

*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A4 용지로 10장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녹취가 많았다.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3편으로 나누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은 거의 동의어이지만, 문장의 맥락상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어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고 편의상 두 개의 단어를 문맥에 맞게 사용하였다.



Q. 퀘스쳐닝은 어떤 곳인가? 단체소개를 부탁드린다.

경은  ‘어떤 단체다’라고 말하기에 아직 퀘스쳐닝의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다. 선거 이후에 새롭게 출발하는 현재는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시기이다. 여성주의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공동체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Q. 두 사람은 여성주의에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경은  환경 문제와 관련된 ‘에코 캠퍼스’라는 팀에서 활동을 했었다. ‘쓰레기 없는 MT’와 같은 활동들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지난 총여학생회인 Speak-Out의 에코페미니즘 팀과 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퀘스쳐닝 선본의 후보자로도 출마하게 되었고.

화정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일을 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대의, 대변하는 학생회 체계에서 어떤 활동을 하기에 굉장히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학생회가 학생의 권리, 권익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다른 것들을 배타적으로 여기게 되는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살맛’이라는 단체에서 학교의 미화, 경비노동자 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도울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학교의 미화노동자 분들은 대부분 고령 여성 비정규직이신데, 노동 운동 판 안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법, 투쟁, 단결 이런 것들이 중시되다 보니까 다른 것들이 가려지는 측면이 많았다. 고령 여성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억압을 임금 몇 푼, 고용 방식만 가지고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회 가부장제 등의 문제와 맞물려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고민들의 과정 속에서 우연히 지금의 퀘스쳐닝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말 같이 활동해보고 픈 마음이 들었다.

Q. 선거를 인상 깊게 보았다. 고함20 독자들에게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

경은  많은 사람들이 선거과정도 그렇고 낙선 이후에 우리가 많이 힘들 거라고 예상을 하더라. 실제로 선거과정은 굉장히 재밌었고, 힘을 많이 받는 과정이었다. 다른 선본이 없이 단선으로 선거를 치렀을 때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지자들과 소통할 기회가 오히려 적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지지자들이 지지의 제스처를 보내줄 때 힘을 많이 받았다. 

사실 선거 시작할 때부터 당연히 낙선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낮은 지지율로 낙선한다면 굳이 이 학교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해주는 목소리를 보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는 활동이 필요한 활동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단 한 명이라도 우리를 지지한다면 활동을 이어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개표 당시에 우리의 패색이 짙은 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온하거나 오히려 가끔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이미 지고 있느냐, 이기고 있느냐의 문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만큼이나 우리를 지지했다’는 식의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선거 과정을 겪으면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많이 얻었다. 낙선 후에 퀘스쳐닝이 나가떨어지지 않고 지속해서 활동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Q. 낙선 이후에도 여성주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고 들었다.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화정  우선 여성주의 세미나를 진행하려고 한다. 1월 10일에 첫 모임이다. 선거 후에 ‘낙선 파티’를 했었는데 그 때 와서 지지해주시고 연락처를 남겨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과 함께 세미나를 해보려고 한다. 이것을 토대로 개강 후에 학내에서 매체도 내고 새로운 세미나도 진행하면서 활동을 확대해 볼 예정이다.

서문 거주 여학생 네트워크나 도시락 모임 등의 네트워크 활동이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으로 준비했던 프리 마켓, 재능 나누기, 스펙 역행하는 인턴, 생태 여행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기획 중이다. 네트워크 활동은 각자의 방에만 갇혀 그들의 고민을 나누지 못하는 개인이 연대하는 활동이다. 스펙 역행하는 인턴은 사회 내의 여성주의 단체들과 연계해서 추진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여학생회라는 자리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활동들을 해보고 싶어 만들었던 공약이기 때문에, 이런 공약들을 통해 가능성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여성주의 운동을 꼭 총여학생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권이 왜 총학생회를 하려고 하느냐의 문제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화정  총여학생회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여학생 복지를 위한 것이라면 총학생회 안에서도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대표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총학생회를 움직여 온 것은 아니다. 중심적인 목소리만 취사선택 되어 왔고, 가려지는 목소리들이 분명히 있다. 교육권 이야기를 할 때 총학생회는 등록금, 강의 숫자의 문제를 제기하지 비장애인 중심으로 되어 있는 계단 구조나 강의 내의 성폭력적 발언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가려진 목소리들을 끌어내는 것이 총여학생회의 처음 목적이었고, 지금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경은  총여학생회가 학교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성주의, 그리고 총여학생회가 단순히 여성만을 대변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거다. 총여학생회는 소수의 가려진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역할을 하려면 복지 중심의 총여가 아닌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학생회가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현실적으로 학생회가 아닌 상태에서 학생들이 뭔가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다.

Q. 총여학생회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여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보통의 반여성주의자들 간에 인식차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그동안 접해온 여성주의도 그렇고, 총여학생회도 그렇고 단순히 ‘여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남자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실제로 퀘스쳐닝에도 같이 활동하는 남성이 있다고 들었다.

경은  총여학생회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소수자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그런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수자의 대명사이면서, ‘수적 소수’가 아닌 ‘권력적 소수’라는 것을 굉장히 잘 드러내 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바꾼다고 인식이 변화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화정  사실 좀 되게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유권자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것이 참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이다. 총여학생회가 단지 ‘생물학적 여성’의 권위 향상과 복지를 늘리고 이런 활동을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여성 내에도 굉장히 다양한 차이들이 있고, 여성이라는 집단 내부에서도 권력적 관계가 있을 수 있고, 남성이라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유권자가 생물학적 여성에 한정되는 것은 굉장히 큰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큰 모순이다.

경은  선거를 통해 여성주의 활동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큰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총여학생회의 정당성은 득표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소수를 이야기하려는 곳이기 때문이다.

Q. 다음 선거에 도전할 계획인가.

화정  지금 딱 결정되어 있는 문제는 아니다. 1년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 여성주의 활동을 이어나갈지 선택할 시간이 올 것이다. 총여학생회의 타이틀을 달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이 각각 분명히 존재한다.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1편 보기 >> http://goham20.com/602 (낙선, 그러나 계속되는 여성주의)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2편 보기 >> http://goham20.com/603 (여성주의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말라)
연세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뷰 3편 보기 >> http://goham20.com/604 (페미니즘으로 본 20대의 다른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