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묘한 힘이 있다. 사람에게 생활의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도 하고, 밥을 먹을 때만큼은 꼼짝없이 식탁이나 탁자 앞에 앉히는 나름의 구속력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이 ‘밥’을 대접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생활 에너지를 공급해주겠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그쪽과 친해지고 싶다는 호의를 내비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의 특성상 밥 먹는 동안에 우리는 정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소화를 방해하는 큰 움직임은 자제한 채 식탁 앞에 앉아 꼼짝없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게 만들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준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접하게 되는 문화 중의 하나는 선배와 후배 사이에 형성되는 ‘밥 사주는 문화’이다. 대학에 먼저 들어온 선배가 후배에게 한 끼의 식사를 자신의 돈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왜 선배와 후배 사이에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았을까? 그것은 오랜 시간을 같은 곳에 머무르기 때문에 친해질 수밖에 없는 초, 중,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교에서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는 것에 기인한다. 시간을 함께 쓰며 친해질 기회가 초중고 시절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이런 방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 여건과 밥의 묘한 마력이 크로스를 하여 대학의 ‘밥 사주는 문화’가 탄생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의 ‘밥 사주는 문화’는 제 기능을 하 있는 걸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배한테는 후배에게 친해지고 싶다는 호의의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되고, 후배에게는 선배가 보내는 메시지에 화답하여 자신도 선배와 친해지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이 문화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요즈음의 밥 사주는 문화에는 선배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고 후배의 화답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가 갖는 의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탓이다. 밥 사주는 문화에서 선배들은 그들 역시 그들의 선배에게 얻어먹은 것도 있고 으레 선배라고 하면 학기 초에 후배들 밥 사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밥을 사주게 된다. 인식이 이렇다 보니, 밥 사주는 행위는 친밀감을 표현하고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단지 선배로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다름 아니게 된다. 그리고 형평성의 측면에서 어느 한 후배에게만 밥을 사줄 수 없으니 여러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게 되는데, 이렇게 은연중에 밥값으로 인한 지출이 늘어나다보면 후배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의 의미는 퇴색되고 지갑 사정에만 더욱 민감해지게 된다.

후배들은 대학에 입학하자 선배들이 자발적으로 밥을 사준다고 하니 으레 후배는 밥을 얻어먹는 자리로구나 하고 밥을 얻어먹게 된다. 역시 ‘선배들이 왜 우리에게 밥을 사주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보니 은연중에 선배를 ‘밥 사주는 기계’로 여기는 우를 범한다. 또한 ‘밥은 얻어먹어야겠는데 가면 무슨 얘기를 하나?’와 같이 생각하여 이 자리를 단지 ‘밥’만 얻어먹는 자리라고 받아들이기도 하며, ‘A 선배는 고기를 사줬는데 B 선배는 과연 뭘 사줄려나?’ 와 같이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부차적인 것에 해당하는 밥의 가격과 질을 놓고 선배들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처럼 밥 사주는 문화가 선배와 후배 각각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관행처럼 받아들여지고 지속된다면 이러한 문화가 더 이상 존속할 이유는 없다. 서로의 시간을 소모하는 일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시급 4320원의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시대에, 특히 선배들에게는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번 돈을 공허한 식사자리의 밥값을 대는 데에 쓰는 것처럼 한심한 짓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기사의 지적이 무색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선배와 후배가 의미 있는 식사 자리를 만드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밥 사주기 문화’에서 문화의 주체와 객체인 선후배가 ‘왜 밥을 사주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문화는 위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정신과 의미는 퇴색한 채 물질만이 남은 문화로 전락해버릴 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 중에 합리적·진보적 관점에서 가치가 의심되거나 부정되고 있는 것을 인습이라 일컫는다. 인습은 그저 지금까지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 집단에 의해 명맥을 유지한다. 밥 사주는 문화가 단지 내가 나의 선배한테 얻어먹었고 위에서부터 쭉 내려오던 전통이니까 그저 아무런 고민 없이 행해지는 것이라면 인습이 유지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지금, 이제 또다시 만연할 ‘밥 사주는 문화’에 대해 고민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