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 하면 경기장이 떠나갈듯 한 관중들의 함성과, 선수들의 땀내 나는 열정으로 숨쉬기도 힘든 긴장감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주말이면 동네 공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상상하며 운동을 하고,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삼삼오오 친구 집에 모여들어 중계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음에도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방송보다 똑똑하고 협회보다 사명감 넘치는 준전문가집단, 피겨스케이팅 덕후가 그들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혜선(21)씨도 전형적인 피겨 덕후이다. 덕후란 말에 어색해 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보여준 피겨에 대한 애정과 건전한 몰입은 고함이 찾는 ‘덕후’ 에 손색이 없었다.


피겨 덕후, 이혜선

Q. 언제부터 피겨팬이 되셨나요?

- 고3 때 TV에서 김연아 선수 갈라쇼 (2008년 세계 선수권일거예요)를 했는데, 제가 평소좋아하는 노래에 맞춘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반했어요. 그리고 수능 끝나고 나서 그 유명한 죽음의 무도 보고 완전히 꽂혔어요.

Q. 그렇다면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는 다시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요.

- 네.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김연아 선수를 좋아하구요. 곽민정 선수, 라우라 레피스토 (핀란드 피겨스케이팅 선수)도 좋아합니다.

Q. 피겨 스케이팅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기를 보는 눈을 갖추는 것 자체가 어려운 스포츠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선씨가 피겨 스케이팅을 즐기게 만드는 피겨스케이팅만의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 일단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경기를 보는 관점이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경기의 승패 이외에도, 완성도 부분에서 관심가질 거리가 많아요.

(그녀는 여기서 이미 국제 피겨스케이팅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만큼 몰입해 있었다.)

Q. 피겨 스케이팅을 직접 해본적은 있으세요?

-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에서 일반인들 상대로 열리는 취미 강좌를 듣고 있어요. 한 반에 20여명씩 세타임을 운영 할 만큼 인기가 많아요. 그런데 생각만큼 몸이 안 따라줘서 참 힘드네요. 거기가서 놀란 것은 의외로 아줌마 수강생들이 많다는 거예요. 자식에게 피겨 스케이팅을 시키는 어머니들이 아이들 데려다 주고 배우는 경우가 많아요.


피겨 덕후들의 핫 이슈

Q. 피겨팬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피겨를 즐기고 계신가요?

- 피겨팬은 거의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 접해요. 한국에서 개최하는 정기적인 경기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죠.

Q. 인터넷이라면 주로 어느 커뮤니티에서 활동 하시나요?

- 디시 인사이드의 피겨스케이팅 갤러리나 김연아 갤러리에서 주로 활동하구요, 피버 스케이팅이라는 사이트도 있어요.

Q. 한 때 피겨 갤러리가 팬들 간의 싸움으로 시끄러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김연아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고 유명해져서 광고도 여러 편 찍으니까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싸우고 시끄러웠는데 요즘엔 태교하는 중이라 그런 일 별로 없어요.

(태교라면?)김연아 선수가 세계 선수권을 앞두고 있거든요. 팬들이 나쁜 말, 나쁜 행동 하면 그게 그대로 김연아 선수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에 좋은 말, 좋은 행동만 하자는 거죠. 피겨 팬은 아무래도 여자가 훨씬 많거든요. 그래서 태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피겨 스케이팅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어 버린 피겨 여왕 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팬들은 황량하던 대한민국 피겨계에서 홀로 일어선 그녀를 
스포츠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아끼고 사랑한다


아쉬움

Q. 피겨 스케이팅은 TV에서 경기 중계도 잘 안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기는 보통 어떻게 접하나요?

김연아 선수가 나올 때는 SBS에서 독점 중계라도 해주니 TV로 보구요. 보통은 아프리카 TV로 보거나 다른 팬들이 구해온 일본 방송 영상 봐요. 일본은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지원이 많아서 TV중계도 많이 해주거든요.

Q. 독점 중계중인 SBS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말 그대로 독점일 뿐이지 책임감 있게 중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래 해 왔으니까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아직 피겨팬들의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죠. 초창기에 어떤 해설자 분이 어떤 선수의 동작을 보고 전문적인 설명도 없이 ‘발이 올라갑니다’ 라고 했을 때는 차라리 웃어버렸죠.

Q. SBS뿐만 아니라 언론들이 대체적으로 팬보다 뒤쳐져 있는 것 같던데요.

- 피겨가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기사를 쓰려면 조금 더 알아보고 썼으면 좋겠어요.

Q. 요즘엔 팬들 내부에서 관중 문화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있더라구요?

- 저도 개인적으로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일본 관중들처럼 너무 무뚝뚝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점프할 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함성소리와 박수소리는 정말 큰 문제예요.

Q. 피겨 문화는 협회나 언론보다 팬들이 먼저 만들어 나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피겨 스케이팅이 대중적인 스포츠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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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기는 어렵다고 봐요. 피겨 스케이팅은 돈 드는 스포츠거든요. 경기장 빌리는 것도 그렇고 훈련도 개인 레슨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입지도 좁은 편이예요. 김연아 선수가 물러나면 옛날처럼 소수가 즐기는 스포츠가 될 것만 같아요.


못 다한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저 피겨 스케이팅의 앞날에 대한 고민에만 빠져드는 그녀. 이처럼 ‘덕후’ 들은 그저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책임감마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분 좋은 몰입감을 이어 갈 다음 덕후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