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되면 적어도 학원 같은 데는 가지 않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수고로웠던 입시는 끝나기에 더 이상 학원과 인연을 맺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10대를 벗어난 이 땅의 수많은 대학생, 직장인들은 여전히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는 졸업을 하기 위해 토익학원으로, 누군가는 해외영업 대비를 하기 위해 회화학원으로, 누군가는 고시로 어려운 취업문을 돌파하기 위해 노량진으로 신림으로 간다. 이 가운데 으레 일정 기간이 끝나면 이별하게 되는 보통 학원들과 달리, 기약 없이 머무르게 되는 곳이 있다.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터전인 신림이 그곳이다.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서야 신림동 고시촌으로 가는 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종점에 내리니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음식점, 카페, 은행 등이 즐비한 여느 대학가와 크게 달라 보일 것 없는 곳. 이것이 신림 고시촌의 첫인상이었다. 이 지역은 사실 관악구 대학동으로 이름처럼 실은 대학가에 가깝다. 그러나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 이곳은 고시생들이 밀집해 있는 특수지구일 뿐이다. 여기에 발을 디디기 전 내가 그러했듯이. 



많이 읽힌 책과 새로 나온 책을 적어 둔 칠판이 인상적인 서점 ‘그날이오면’, 세상의 모든 책을 산다는 ‘도동고서’, 합격을 기원한다는 ‘한국서점’까지 보고 나서야 고시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학생 최재은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복작복작거리는 3월의 고시촌

“2월에 사시, 행시, 외시 모두 1차를 봤고 발표 기다리고 있는데 잘 본 사람들은 3순환 듣고 있고, 아예 못 본 사람들은 자습하거나 떠나려고 짐 빼고 있어요. 또 요새가 한창 새로운 사람들 들어올 때예요. 보통 수업이 3월에 열리거든요. 학교도 개강해서 새내기들과 선후배가 섞여서 마시고 죽으러 넘어오고 있죠. 고시촌이지만 사실 대학가이기도 해서 별다를 건 없답니다.”

부근에 서울대학교가 있어서 대학생들의 출몰이 잦다고 한다. 고시생이 신림의 마스코트로 한 축을 맡고 있다면 대학생들이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까. 음식점, 카페, 헬스클럽, 각종 가게들이 늘어선 모습은 대학가 상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3월의 북적이는 분위기도 고시촌을 피해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여덟시 반 정도에 학원에 도착한다는 그녀는 무수히 서 있는 버스 줄을 볼 때마다 놀란다고 했다. 줄은 두 종류로 나뉜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반, 고시촌 입구까지 가는 통학 고시생 반. 방학 내내 조용했던 신림은 개강을 기점으로 조금 더 떠들썩해졌단다.

고시생이 먹고 사는 법

고시생은 어떻게 먹고 살까. 고시촌은 대학생과 외부인 유입이 많은 번화가와 고시원, 독서실이 몰려 있는 한적한 윗동네로 구분되어 있었다. 재은씨는 밥값이 싼 고시식당이나 밥집을 애용한다고 했다. 고시식당은 주로 지하에 있고 점심, 저녁 시간이 정해져 있다. 뷔페식이라는 점이 특징이지만 기름기가 많고 조미료 맛이 강하다고 한다. 취재 겸 식사를 했던 식당에는 4, 5, 6000원 메뉴가 있었다. 식자재 값 인상으로 밥값도 500~1000원 정도 오르는 추세인데 4000원 메뉴가 있어 반갑고 신기했다. 고시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듯했다. 삼겹살 구이를 1인용으로 파는 점이 특이했다. 식당 주인 장명수(가명) 씨는 “친구들끼리 오기도 하지만 한가한 때 혼자 오는 학생들이 많아 1인용 메뉴를 개발하다 만들었어요. 고시촌이다 보니 동네 흐름에 맞게 메뉴에 변화를 주죠.” 라고 말했다.  

식당 안에는 커다란 TV가 있었는데 재은씨는 유난히 고시촌 식당에 TV가 많다고 전했다.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기에 주로 뉴스를 본다고 한다. 주말에 가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란다. 이제 고시생들의 '사는 법'을 알아볼 차례다. 재은씨처럼 집을 오가는 통학 고시생도 있지만 신림에는 고시원이나 원룸에 터를 잡은 고시생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 비싼 학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을까. 부모님에게 기대는 이들도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본인이 충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수생은 학원에서 조교를 많이 해요. 학원비도 줄어들고 정보 접근이 빨라져서 좋대요. 또 조교들끼리 가깝게 지내니까 새로운 인맥도 생기고요. 매니저라는 것도 있는데 2차 시험 경험자나 합격생이 주로 맡아요. 학원생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 주고 답안지 가이드라인 짜고 첨삭도 해 주죠. 독서실 총무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고시생들에게 신림 고시촌이란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 수업을 듣고 나서 자습-스터디 모임-자습으로 이어지는 하루. 그런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여기는, 신림. 일정한 시각 만나게 되는 얼굴들만 훑어도 본인이 고시생인 것을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상으로부터의 단절과 새로운 만남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곳은 고시생들에게 어떤 장소일까.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조이슬 씨는 신림을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동네’로 정리했다. “신림에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고시식당 말고 보통 음식점에서 밥 먹었을 때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가끔 친구 생일 때 되면 점심시간이 1~2시간 길어지곤 했었어요. 케익 먹으면서 수다 떠는 작은 일에도 기분 좋아지는 게 여기에요.”라며 한 학원 강사의 이야기도 덤으로 들려주었다. “한림 법학원의 황종휴 강사님 얘긴데요. 공부할 때 정말 열심히 하고 나서 점심시간 때 스스로에 대한 상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대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더라고요.” 소소한 일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짠해졌다.

고시촌에서 공부하다 최근 학교로 돌아간 양혜미(가명) 씨에게 신림은 괴로운 기억을 가진 곳임과 동시에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였다. “학교는 복학 문제도 있고 너무 멀어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서 다시 왔어요. 신림동 분위기가 싫었던 것도 있고요. 늘 공부를 해도 변화 없는 삶이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교내 고시반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었던 데다 보니 마음은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막상 떠나오니 공부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두꺼운 책을 볼 때 세워두는 독서대가 즐비한 문구점, 어느 서점에 가도 단번에 눈에 띄는 여러 가지 고시책들, 고시자료들을 파는 작은 가게, ‘동차합격’이라는 이름의 식당까지. 윗마을은 그야말로 고시촌 그 자체였다. 고시원과 독서실, 고시생들이 머무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곳은 몹시 고요했다. 문득 발견한 '사시 존치&법대부활을 위한 사시생 촛불집회' 현수막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열한 시에 가까워진 늦은 밤에도 환히 켜져 있는 불빛들이 보였다. 조그마한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고시생들이 꿈을 키우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것이다. 목표에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고단한 내일을 보내고 있을 그들에게 ‘빛나는 내일’이 도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