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

 

우리가 흔히 쓰곤 하는 '허세'의 사전적 정의다. 오늘날 물질문화와 인터넷에서의 컨텐츠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와 정도로 불어나고 있고, 그만큼 이와 관련한 허세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고 흔히 '허세'라고 칭하는 것에는 크게 소비에 관련된 허세와 취향에 관련된 허세, 이 두 가지가 있겠다. 전자의 소비 관련 허세는 형편이 되지 않거나 본인의 수입을 훌쩍 넘어서는 소비를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경우다. 이  허세는 명품 가방을 메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는 '된장녀' 등의 용어를 낳기도 했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후 이 용어는 단순히 앞에서 설명한 겉모습 뿐 아니라 평소의 가치관이 물질만능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등 더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후자의 허세는 취향과 관련한 허세로, 물질적인 것 외의 감정이나 언행, 취향 등에서 비롯된 허세라고 할 수 있다. '싸이 허세'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자기만의 감성에 젖어 개인 미니 홈페이지에 쓴 글이, 읽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낯간지러울 경우, 글쓴이가 뭣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 경우 '싸이 허세'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이 '싸이 허세'는 또 문화적 취향과 관련하여 타인의 취향과 나의 취향을 구분 짓는 허세도 있다. '나는 클래식만 들어. 나는 예술 영화만 봐. 아이돌은 저급해. 그래서 아이돌을 듣는 너희들도 저급해. 난 고급이라서 아이돌 음악을 듣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문화적 취향 면에서의 허세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다양한 음악,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잘 듣지 않는 마니아적인 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의도적으로 상업 영화나 유행가요 등을 기피함으로써 자신을 고급화하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려는 것 역시 허세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허세'는 누가 '허세'라고 손가락질하는가? 위에서 제시했듯 허세의 사전적 정의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를 뜻한다. 그런데 취향적인 허세를 부리는  A에게 '허세'라고 손가락질하는 B는 과연 A의 '실속'에 대해 알고 있는가? A의 취향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사실 B에게는 없다. A가 마니악한 음악만을 보든 예술영화만 골라보든 그것은 A가 선택한 취향이고, 그가 실속이 있든 없든 그러한 문화를 접하며 쾌감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만이다. 그런데 B가 그러한 A를 '허세'라고 손가락질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시선은 '뭣도 모르면서'일 것이다. 마니악한 음악이 왜 고급인지, 예술영화는 왜 예술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감상하는 A에 대한 답답함의 시선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생은 "친구가 예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나 촬영 기법같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데 친구는 그저 '좋았다'고만 한다. 대체 그저 '좋을 거면' 왜 굳이 예술 영화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싸이 허세'도 마찬가지다. 본래의 미니홈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물론 점차 그 본성이 변질되어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각종 '허세' 글과 사진들은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글이나 사진을 올린 홈페이지 주인이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러한 글이나 사진을 올린 것이라면 대성공한 셈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러한 글이나 사진이 정말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할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허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정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나 지금 허세부리고 있어'라고 말하며 글을 쓰거나 문화를 즐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허세부린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욕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만약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허세'부리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질과 비웃음 안에는 우월함이 있다. '저 사람은 저런 고급 문화를 즐길 자격이 없어.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야.' 또는 '저 사람은 저런 감성적인 글을 쓸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 밑에 깔려있는 우월감이 그야말로 허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