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게임, 랜덤 게임. OO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호다. 그냥 읽기만 했는데 누군가의 입을 빌려 자동으로 음성지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대학의 술자리 문화에서 술 게임은 빠지지 않기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각종 행사의 술자리나 엠티에서 분위기가 무르익게 하기 위해서는 통과의례처럼 술 게임이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대학생활의 초반부에 접하는 술 게임은 분명 재미도 있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도 유용하다. 걸리면 벌주를 마셔야 하기 때문에 술 게임은 그자체로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또한 이렇게 술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의 취기도 오르고 술자리의 흥도 덩달아 오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술 게임은 낯선 이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틀을 제공해줌으로써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술 게임은 대학생활의 ‘초반부’에만 유효하다. ‘초반부’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 낯설고 어려워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술 게임을 하는 것이 초기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초반부 이후에 구성원들 간에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쌓이게 되면 술 게임은 더 이상의 구실을 하기 힘들다.

먼저 술 게임은 게임의 구조적 특징상 누군가는 계속 술을 마셔야한다는 점에서 소비적이다. 술 게임은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게임이다. 그것은 바로 게임에서 걸린 사람이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게임에서 걸린 사람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권주가를 불러주는 상황에서 자신이 마시지 않을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술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술 게임의 구조 하에서 누군가는 이른바 ‘꽐라’가 될 수밖에 없다.

술 게임은 술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게 하는 것 의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소비적이다. 이제는 서로 익숙하고 친한 관계의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바라는 것은 단지 흥겨운 분위기만이 아니다. 이들은 술자리를 통해, 술의 힘을 빌려 평소에 하기 힘들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서로 교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마시기만 하는 술 게임에서 어떻게 이러한 소통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술 게임에서 가능한 건 술과의 교감뿐이다.
 


이처럼 술을 소비적으로만 마시는 술 문화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술은 그 나름의 효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술 게임 체제 하에서 제대로 발현될 수 없다. 술 게임에 참여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음날의 숙취와 신체의 노곤함에서 비롯되는 후회뿐이다.

본래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함으로써 제정신일 때 두텁게 쌓아 놓은 마음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맨 정신일 때는 하기 힘든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게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술자리에서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쌓게 되는 묘한 연대감은 술자리 이후에 더욱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술의 속성을 인지했다면 이제는 지금의 술 게임으로 점철된 술 문화를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 그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대학생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공감적 소통이 어렵다면 적어도 술자리에서만큼은 속 깊은 이야기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제까지나 술자리에서 술 게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