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8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 이 시각. 대전의 야간학교 한 강의실에는 10명 남짓의 만학도들과 한 교사가 고등학교 과학의 ‘화산과 지진’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2011년 대입/고입 자격 검정고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교사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학생들 간의 교감 속에서, 일반 학교에서도 보기 힘든 열정적인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



현재 대전 야간학교들(반딧불야학, BBS야학, 성은야학, 한마음야학, 한밭야학)의 운영은 모두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80년대에, 흔히 말하는 블루칼라들(건설 및 생산 현장에서 근무한 노동자 세대)의 고졸, 고입학력 취득 지원을 위해서 생겨난 야간학교들은, 초기에는 20~30대 청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에 따라 정부에서도 산업의 역군으로 활약한 이 청년들을 돕기 위해 섭섭지 않은 지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야간학교 학생들의 연령층이 눈에 띄게 높아지자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청년단체의 지원이 끊기게 되고, 현재는 모 공기업에서 매달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성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블루칼라들의 놀이터이자 쉼터였던 야간학교



가장 힘든 적 ‘무관심’

성은야학 신현석 교감선생님( 35)은 “관련부처에서 우리 같은 비영리, 약소단체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지원을 해주기 힘들다면 비영리 단체로 등록이라도 해주어야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같은 것이 가능해져서 야학이 더 활성화 될텐데 아쉬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즉, 현재는 아예 무소속 사립 단체이므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지역 야간학교들은 2006년에 개설된 대야협(대전 야학 협의회)이라는 협의기구를 개편하여 각 학교의 의견을 여러 곳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교섭창구가 단일화되자 분산되던 목소리들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체계적인 의사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당국과 협의중인 구체적인 안건 중에 몇가지를 살펴보면,

- 정부 소유의 공관(空館)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
- 일선 학교에서 필요없어 방치되고 있는 교과서 및 교재들의 야학으로의 지원.
- 야간학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봉사단체 간의 교류 활성화 주선

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최근에 와서야 당국은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찌보면 교육의 일선에서, 그것도 국가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는 ‘사교육 줄이기’의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이 야간학교를 이렇게 홀대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야간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다방면의 실제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야간학교의 살아있는 역사, ‘교사’들의 마음가짐

상황이 별로 안 좋아졌지만, 어쨌든 야간학교의 명맥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것에는 교사들이 중심에 있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부터 철저한 비영리 봉사단체라는 성격을 고수했기 때문에 교사들도 모두 봉사자로 이루어져 왔다. 

초기에는 봉사자들이 초, 중등학교 현직 교사들과 직장인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요즘에 와서는 거의 모두가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가르친다” 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야간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권대일 학생(23. KAIST 화학과)은 “야간학교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단순히 희생정신만 가지고 온 학생들이 아닐지라도, 활동할수록 스스로 보람을 찾고 오히려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고 말했다. 역시 ‘과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윤여광 학생(24, 충남대 토목공학과)은 “봉사활동이 혹여나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진심으로 임할 자세를 갖는 것 정도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학생분들을 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활동하는 교사들이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람을 찾고 즐겁게 봉사하게 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스펙 쌓기, 졸업의 수단으로만 자꾸 전락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세계를 다시 한번 반성해보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야간학교의 미래

1987년부터 9년제 의무교육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전면 실시는 2004년부터) 그리하여 약 20년이 지난 지금, 중학교 졸업자격(이하, 중졸 자격) 취득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입 자격 시험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숫자도 줄어든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중졸 자격 준비하는 이들의 감소가 훨씬 심한 것이 현실이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신현석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야학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학생모집이 점점 힘들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대응책을 여러모로 강구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시대에 맞추어 외국인 노동자들 및 재외국민들의 자녀교육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보호대상자 및 차상위계층 자녀들의 보충수업 등을 일정부분 담당하는 것을 현재 시 당국과 활발히 논의하고 있습니다.”

야간학교의 본래 취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앞으로 야간학교가 나아갈 방향은 굉장히 색다르고 획기적일 수도 있다는 신 교감의 말이였다.

교육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여러 가지 대안학교 및 자율학교가 인정받고 있다.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더욱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외된 계층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표면적으로는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체감하기에는 더 줄어든 느낌이 크다. 비정규교육기관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배우고자, 그리고 가르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야간학교에 관심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