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강용석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이 21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징계심사소위에서 무산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강 의원의 제명을 위한 의결 정족수는 징계소위 8명의 2/3 이상인 6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 민주당 백원우 의원, 자유선진당 임영호 의원이 불참해 이 날 제명안은 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13일 윤리특위의 자문기구인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강 의원의 제명을 의결한 바 있어, 이를 무시한 이 날 결정은 ‘제 식구 감싸기’ 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이 날 결정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정치인의 성범죄 파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그들을 단죄하지 못한 우리가 이 날 징계 무산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성(性)나라당의 성범죄 계보, 국민들은 성난다.

근래 일어났던 정치인들의 성범죄를 거물급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06년 최연희 의원은 모 신문 여기자의 가슴을 만졌다. 명백한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강용석 의원.

성추행이라는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술집 여주인인 줄 알았다.” 며 변명해 수많은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초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는 신년인사를 겸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당시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남자’를 거론하며 “요즘 왜 그렇게 섹스를 안 하냐, ……(중략) 너무 안 해, 너무 안 하면 흐물흐물 낙지 같아져.” 라고 말해 성희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사건이 잊혀질 즈음, 이번엔 이명박 대통령이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에 갈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한다더라.” 라는 발언을 해 사회적 공분을 샀었다. 성희롱의 바통은 2008년 정몽준 의원이 이어받았다.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거리유세 중 여기자의 볼을 만지는 성희롱을 저질렀다. 잠시 잠잠하던 성범죄의 망령은 2010년 다시 부활했다. 강용석 의원이 아나운서 지망생에게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더라” 라고 말해 큰 파문이 일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소녀시대 내가 봐도 아주 잘 생겼다. 쭉쭉빵빵이야” 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또 그 파장이 끝나기도 전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룸에 가면 자연산만 찾는다” 고 발언해 급기야 한나라당은 성(性)나라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했다.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

말은 평소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드러낸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의 정치인 솔론은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말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저들 정치인의 평소 행실이 드러난다. 최연희 의원의 발언에서 우리는 최 의원이 ‘술집 여자’의 가슴과 ‘기자’의 가슴을 다르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술집 여자는 아무렇게나 만져도 되는 부류인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대표의 발언에서 우리는 성매매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은밀히 ‘무언가가’ 자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연희 의원이나 정몽준 의원처럼 가슴을 만지고, 볼을 쓰다듬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의 평소 가치관과 성에 대한 의식이 담긴 ‘말실수’도 중요한 성희롱임은 물론이다. 특히 저들이 사회지도층으로서 말에 조심해야 하고 또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언격은 인격이다. 그들의 비루한 언격에서 그들의 인격이 드러난다. 연예인이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 직업이라면, 정치인은 말로 살고 말로 죽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다. 성추문에 휩싸인 그들이 아직도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생존법, 침묵의 카르텔 그리고 망각

실제 위 언급된 정치인들 중 성범죄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최연희 의원과 강용석 의원이 한나라의 당적을 버리긴 했지만 의원직은 유지하고 있다. 스캔들이 터지면 며칠간 그들을 성토하는 여론이 이어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건은 기억에서 잊혀진다. 그리고 그들은 화려히 부활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정치인들이 부활하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렇다면 그 메커니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먼저 보수언론의 침묵을 들 수 있다. 단순히 건수로만 보아도, 이명박 대통령의 ‘마사지걸’ 발언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통틀어 사설 형식으로 1건 보도되었다. 정몽준 의원 성희롱 사건의 경우도 동아일보에 1건 보도되었을 뿐이었고, 강재섭 전 대표, 김문수 도지사의 경우는 아예 1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이 사건들은 인터넷 상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들이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고의적으로 사건들을 은폐하려했다는 의심의 여지가 짙다. 그러나 민주노총 성폭행 사건이나 이강수(당시 민주당) 고창 군수 성희롱 사건의 경우 대대적으로 보도해 그들의 이중잣대를 보여주었다. 또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이슈가 되어버린 최연희, 강용석 의원 사건의 경우 보도는 했으되, 전형적인 물타기 보도를 보여주며 논점을 흐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장 점유율이 90% 에 이르는 세 신문이 ‘침묵의 카르텔’을 통해 보수정당을 도우려 했다는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의 감추기, 물타기 식 보도행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의 망각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최연희 의원은 47% 라는 높은 득표율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말실수’ 가 아니라 그가 저지른 일은 중범죄 급의 성추행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은 컸다. ‘성추행범’ 이라는 주홍글씨는 마치 색연필로 그린 것처럼 씻겨 없어져버렸다. 선거기간 중 성희롱 파문에 휩싸였던 정몽준 의원 또한 54.4% 의 고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부끄럽고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성범죄 정치인들 중 유권자들에 의해 정치적 평가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인은 표를 보고 자신에 대한 여론을 평가한다. 성추행을 저질러도, 자신의 천박한 성도덕을 드러내도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보고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국민의 손으로 그들을 단죄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우리의 손으로

“동료 의원을 우리 손으로 제명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 윤리특위의 징계소위가 무산된 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했다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동료 의원을 제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론을 등한시하고 제 식구를 지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의원 한 명을 살리는 대가로 몇 명의 의원이 낙선할 수 있는지 유권자가 보여주어야 한다. 해답은 이미 김무성 원내대표의 말 속에 있다. ‘그들의 손’ 으로 제명하는 것이 힘들다면 ‘국민의 손’ 으로 제명시켜야 한다. 성(性)범죄자들에게 성역(聖域)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성범죄 정치인을 막을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