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 통상부 전 장관이 딸에게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주었던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현대판 음서제도'를 대놓고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현대차 노동조합이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회사의 신규 직원 채용 시 정년 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 해달라 요구했다. 또 '이를 위한 가점 부여 등 세부사항은 별도로 정한다.'고 규정에 덧붙였다. 정규직 노조원들이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일자리를 세습시키겠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 40만시대. 이젠 기회조차 빼앗기나

아무리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라는 조건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이는 일자리를 자식들에게 세습시키겠다는 현대차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일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청년실업률은 9.5%로 15~29세 청년 40만명이 현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노조가 특혜 채용을 요구한다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다.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아침부터 토익학원에 어학연수 등 스팩 쌓기에 열 올리는 대학생들, 소속 없이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취업 준비생,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는 인턴에게도 어이없고 황당한 단협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럼 현대차 노조를 부모로 두지 못한 것을 원망하란 말인가. 현재 채용 특혜를 받는 것은 300명이라지만 2018년이되면 1000명이 넘어간다고 한다. 취업의 기회는 균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직장 세습은 대학생들이 경쟁 할 기회 조차 빼앗는 것이다. 우수 인재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제안이고, 비정규직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청년실업 40만시대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다.

 

현대차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노동 귀족, 그래서 '우리'는 된다?

현대차 노조 이경훈 지부장은 노조신문을 통해 "현대차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장기근속자의 피와 땀에 대한 보답으로 장기 근속자 직장 세습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피와 땀은 장기 근속자만 흘렸나. 현대차의 임원진과 간부들도 정년 퇴임시, 또는 25년이상 장기 근무했을 시에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을 보상받겠다며 특혜 채용을 요구한다면 대기업 직장 세습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운운하지만, 솔직히 현대차 노조나 노조원들이 회사 발전에 무슨 대단한 공로가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현대차 노조는 항상 분규를 일으키면서 회사 발전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모든 직종의 종사자들이 사회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일자리 세습을 요구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의사의 자식에게는 의사면허증을 주고, 판사의 자식에게 사법고시 볼 경우 특혜를 준다면 사회를 발전 시킬 수 없다. 자신이 근무할 때 이익을 극대화 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만들고 나가겠다는 현대차 노조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실업 40만 시대에 이 같은 단협안 제안은 사회로 막 진출하려는 돈없고 빽없는 대학생들에게는 힘 빠지는 소리다.


비정규직 동료를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현대차 노조는 ”직위 세습은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단협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 조항도 담겨있다.”고 말하며 세간의 불편한 시선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현대차 노조원들이 극단적으로 조직이기주의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정년 퇴임은 짧아지고, 한번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게 되면 정규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만큼 힘들다는 것도 옆에서 보고,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놓은 단협안도 고용시장의 불안성을 인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의 신분하락을 두려워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전에 옆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했어야 했다. 현대차의 비정규직은 8000명 정도, 일은 정규직과 똑같이 하지만 임금은 그들의 60%밖에 받지 못하고 복지라든지 근무 환경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성을 인지해 그들의 기반을 더 튼튼히 다지려고 이익을 극대화 하기전에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변화 됐을 때 불이익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단협안을 제한했더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도움이 되고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했어야 했다. 내 밥그릇을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비정규직의 작은 밥그릇도 함께 챙겼어야 했다.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만이 아니다. 국내 가장 영향력이 큰 노동조합으로서 그 영향력을 내 이익 챙기기에만 사용하지 말고 현대차 노조 밖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큰 목소리를 낸다면 세간의 따가운 시선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5월 1일 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전태일을 떠올려 본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몸을 불사지르며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그리 무리하지도 않은 제안을 했던 전태일. 그 당시 노동 운동의 의미와 완전히 멀어진 현대차 '직장 세습'이 회사측에서는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그 노동 운동의 의미는 변질됐으며 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오래 남을 창피한 사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