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이하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이다. 그의 작품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과  <다윗> <피에타>와 같은 조각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는 경외와 탄성을 자아낸다.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 로랭 믈랑은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두고 그의 천재성을 논하기도 했다.

“약간의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면 일에 파묻혀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볼로냐에서 율리우스 2세의 동상을 만들 때, 그와 세 사람의 조수를 위하여 마련된 침대는 하나 뿐이었다. 이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한 때 다리가 부어 장화를 칼로 찢어야만 했다. 무리하게 장화를 빼면 다리의 살점까지 함께 묻어나올 지경이었다."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곧잘 ‘문예부흥 시대’로 번역된다. 르네상스시대는 이탈리아의 학자였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에 의해 정의되었는데,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 주장한다. 즉, 그의 주장대로라면 찬란했던 고대 문명을 다시금 재흥(再興)시키고 미래 사회를 개선하는 것은 역사의 필수적 과제였다. ‘로마’가 멸망한 뒤 천년이 넘게 이름을 유지해온 ‘신성로마제국'만 봐도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얼마나 고대 문화에 대한 향수를 지녔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항시 르네상스 인간들의 지적·창조적 힘을 꽃피우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역작, <최후의 심판>

르네상스 시대를 제외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에 반하는 ‘회귀’는 늘 존재했다. 그 범위 역시 광대해서 음악, 패션, 영화와 같은 문화는 물론이요, 인문학의 모든 분야와 정치적 담론 등에 걸쳐 역사는 항상 주기적으로 과거의 한 부분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주기적 부흥은 곧 부흥이 아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반복 속에서 살아왔다. ‘과거로의 회귀’는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어쩌면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가 아닐까 한다. 정치권에서 즐겨 쓰는 표현으로 말한다면 ‘부흥전도사'의 역할은 ‘천재’가 적임이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의 삶은 항상 저평가된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피카소도 그랬다. 과학자나 작가들이 ‘걸작’ 하나를 내놓으면 세상이 뒤바뀐다고 말하지만 예술가는 그저 오페라의 악곡 하나, 백작의 성에 걸린 그림 하나 바뀐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런점에서 내가 복고 스타일의 한국의 대중음악 그룹 UV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그들을 ‘메시지’를 주는 가수로 보았기 때문이고, 그 메시지는 대중음악계를 변화시켰던 위대한 변화에 버금가는 ‘함의’를 담고 있었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UV가 뭔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는 사전, 위키피디아에서 UV의 사전적 정의는 3가지다.

[자외선(Ultraviolet)을 뜻하는 UV, 동일 페이지에 대해 같은 사람이 중복 방문한 수치를 제외한 순유입량을 따지는 개념의 유니크 방문자(Unique Viewer)의 약자, 그리고 대한민국의 음악그룹 UV]



2010년 4월, 싱글 1집 <쿨하지 못해 미안해>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끼고’, 같은 CJ E&M 계열의 홈쇼핑의 프라임 타임 ‘펌프질’까지 받으며 아이돌에 버금가는 방송 환경 속에 UV가 등장했다. 그들은 90년대 말 진정한 파격을 선사한, “딸기가 싫어~ 설탕 찍어 먹었어"의 삐삐롱 스타킹으로 알려진 프로듀서 겸 래퍼 ‘뮤지’와 한마디로 ‘뼈그맨'인 ‘유세윤’으로 구성되었는데 UV란 이름은 유부남이 2명이라 지어졌다는 설이 있을 뿐이었다. (본인들 입에서 직접 듣기 전까진 알 수 없다)

UV에 대한 의문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 M.NET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UV신드롬> 속에 빠진 사람이라면 ’UV가 비틀즈와 협연을 했을까?’에 의문을, 현실로 돌아온다면 ‘과연 CJ E&M과 UV는 무슨 사이길래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할까’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만큼 현재 UV에겐 불가능은 없는 듯 하다.

3월 28일 UV의 신보가 나왔다. <이태원프리덤>(Feat.JYP)은 7080세대의 향수가 묻어나는 ‘London Boys’의 ‘Harlem Desire’의 영향을 받은 디스코 곡인데 사실 지난  <편의점>, <쿨하지 못해 미안해>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힙합을, <집행유애>, <인천대공원>에서 90년 중반 한국 댄스가요를 재조명했던 그들이라 ‘복고'의 방향은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음악적 ‘복고’화 보다 더 주목을 끄는 것은 UV의 활동과 궤를 같이 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UV신드롬>의 시즌2이다. 이번 시즌에는 <UV신드롬비긴즈>로 방송되고 있는데 방송 초기에 프롤로그 형식으로 띄운  <UV는 왜 엠넷을 거부하는가>는 흥미롭게도 많은 책들을 연상시킨다. ‘시사되지' 김용민의 <우리는 왜 조선일보를 거부하는가>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말이다. ‘한낱 예능 프로그램에 무슨 조지 오웰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놀랍게도 페이크 다큐 속의 UV의 행적을 좇는 학자는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을 패러디한 ‘기 소보로망’이다.


<UV신드롬비긴즈>는 UV가 밥 말리, 앨비스 프레슬리, 퀸시 존스와 같은 팝의 거장들과 협연을 ‘밥먹듯이’ 했고, ‘우드스탁’을 최초로 주도하였고, 한국의 최고 가수인 빅뱅과 최고 프로듀서인 JYP를 수제자 삼았다는 내용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희망의 찬가를 만들었고, 전쟁의 불안에 떨던 중동의 한 지방 ‘Itaewon’(‘아이티원'이라 읽는다)에 희망과 자유를 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CNN과 BBC는 매회마다 인터뷰를 위해 대기 상태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도, 중세 유럽의 게르만 족 이동에도 연관되었단 이야기도 나온다. 보통 소비자라면 염증이 날 정도로 유세윤의 개코 원숭이 콧구멍과 뮤지의 땋은 머리를 제외하면 뭐가 진짜인지 모를 프로그램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화요일 밤 11시에 승승장구했다. 이제껏 출연했던 빅뱅, 박진영, 구준엽 등 가수들은 물론이요,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에게도 "틀에 박힌 음반 시장에 신선한 '린치'를 가했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김봉현에게 “90년대 한국가요의 기록사적 의미로도 바라볼 만하다”라는 호평을 받는다.


UV는 왜 대중의 사랑을 받는가

속 된 말로 ‘뻥’이어도 좋다. ‘뻥’이 아닌 음악으로도 만족한다. 대중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는 UV, 그들의 고공행진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상은 어떤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현 세대는 정작 직업을 갖기 힘들다.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정당은 사상 최대치의 법인세, 소득세 인하로 인해 조세부담을 서민층에 전가시킨다. 일종의 형용모순인  '쓸데없는 고퀄리티(高Quality)'를 지향하는 그들의 복고적 색채는 지난 10년 간의 좌절과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내재된 강한 반감을 안고 있을 동시대의 젊은 층에게 '나는 (당신들의 기준에선) 쓸데없는 고퀄리티'를 지향하며 한 껏 '쿨'해질 수 있고 당신과는 다른 가치 기준으로 삶을 영유할 수 있다’는 무언의 저항감을 표출하도록 한다.

'똥칼라파워'를 외치던 개콘스타 유세윤이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프로듀서인 JYP에게 랩 플로우를 코칭했다는 내용은 '대중이 지지하는 것이 최고다', 즉 그 어떤 권위와 명성도 대중의 선택 앞에 유명무실해진다는 강한 시대 풍자를 내포하고 있고, 제도화된 권위는 대중의 힘에 의해 변화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UV신드롬> 시즌1,2에 계속해 출연 중인 '할머니 코디네이터 황복순'와 '쭉쭉빵빵' 매니저 김은혜로 말미암아 정체된 관념을 깨뜨리는 희열을 맛보게 했고  ‘할머니와 젊은 미녀'라는 여성성의 대비를 통해 대중의 맹목적 미적 숭배에 대해 조롱하기도 하였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의 유세윤은 ‘합의 하에 헤어져 놓고 문자하는’ 찌질남이지만 <UV신드롬> 속 그는 자신보다 한 뼘은 큰 미녀 매니저의 볼 살을 아무렇게나 ‘농락’할 수 있는 위대한 UV다. 합창단 연습이 끝난 뒤 ‘기를 받는 것’이라며 오직 여성 합창단원 만을 포옹하는 UV, 자신의 기를 받으라고 했던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나?



<UV신드롬>을 통한 세태 풍자는 ‘몰카’를 찍은 엠넷 담당 피디를 폭행하고 카메라를 갖고 도주한 뒤 돌려주기 위해 ‘접선’한 자리에서 테이프 값으로 3만원을 요구했다가 피디가 가진 현금이 750원이라 그것만이라도 갖고 튀는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을 UV의 생활에 녹여내었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사람들은 UV가 가진 거짓에 열광한다. UV는 아픈 다리의 반대 쪽 다리의 정강이를 걷어차 고통스러워 하는 ‘팬’에게 “내가 너의 아픔을 이동시켰다”고 말하고 눈을 감게 한뒤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스타’다. 분명 멸시의 대상이지만 사람들은 반갑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모두 아는 썩은 사실을 썩었다고 말 못하고, 냄새난다고 말 못하는 이 세상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고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갖고 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모순이 일상화 된 세상이다. 변화를 변화라 할 수 없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부르기 힘든 시대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정보는 교류 되었으며 세상은 융합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북유럽식 복지정책을 TV로만 접하지 않으며 미국의 빈곤층에 대해서도 검색 몇 번으로 실체를 알 수 있으며 재스민 혁명을 지지한다는 트윗을 끊임없이 '리트윗' 할 수 있다.

‘해학’을 아는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기존 권위를 부정하진 않는다. 권위는 마땅히 존재할 수 있고 정당한 삶으로 권위를 확보한 사람에겐 찬사를 보내 사회적 이슈메이커로 만드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신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는 그들의 특징일 것이다. 견제의 도구로 자주 등장하는 '고위층에 대한 조롱'과 '아마추어적인 관료들의 실책에 대한 풍자'는 점차 재밌는 방향으로 세분화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장르를 만들어갈 UV는 시대를 잘 만났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보에 귀를 쫑긋 세우고 몰입할 것이다. 합리적인 풍자와 조롱이 담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파는 판매원, 기타치는 김태원도 모두 이태원에 모여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