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오락(四當五落)이란 말이 있다. 하루 네 시간을 자면 대학에 붙고, 다섯 시간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수험계의 격언이다. 심화되는 입시경쟁을 대변하듯 이젠 사당오락도 옛날 말이고 삼당사락(三當四洛)이란 말이 나돈다. 잠을 줄여서 공부를 하겠다는 이런 발상은 이제 단순히 격언에만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모교를 방문했을 때 어떤 학급에 이런 급훈이 붙어 있었다. ‘개 같이 공부하고 정승같이 놀자.’ 한편 인터넷에는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의 공부법이 한참 화제였다.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하루에 17시간을 공부했다고 밝힌 그의 공부법은 수많은 기사로 쓰여졌고, 수많은 블로그나 카페에 실려 수험생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는다. 그러나 생각한다. ‘개 같이 공부하고 정승같이 놀자.’ 라는 급훈은 진정 건전한 고등학생의 급훈이라 할 수 있는가. 하루 17시간 공부법은 우리가 따라야 할 공부법인가.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니, 이게 급훈이야?

필자의 기억 속에 남는 급훈은 세 가지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처음처럼’, 중학생 때의 ‘차가운 머리, 따뜻한 가슴’, 그리고 ‘분수를 알고 분수를 키우자.’ 왜 많고 많았던 급훈 중에 세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해 졸업앨범을 뒤져보았다. 내 고등학교 시절 급훈은 이런 것들이었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엄마가 보고 있다.’……. 앨범을 보고 있자니 비단 우리 학급만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중학교 때의 급훈과 달리 우리의 급훈은 하나같이 ‘경쟁’ 일색이었고 어떤 센스 있는 말로 바꿔놓아도 본질은 ‘죽도록 공부해!’ 라는 한 마디를 다양하게 변화시킨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고등학교 시절의 급훈이 기억날 리 만무하다. 이런 급훈들에 대해 교육대학원에 재학중인 J모(26) 씨는 “추상적인 급훈보다는 오히려 이런 급훈이 나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이런 자극적인 문구를 보면 텍스트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라며 경계했다.

급훈을 보면 교육의 목표를 알 수 있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입시'일까.

급훈의 사전적 의미는 ‘학급에서 교육 목표로 정한 덕목’ 이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급훈은 우리 시대, 학급의 목표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최대한 많은 학생을 최대한 많은 인서울 대학에 보내는 것이 현실적인 학급의, 아니 나아가서 대한민국 모든 고등학교의 목표이다. 그래서 죽도록 공부하라는 우리의 급훈은 이런 목표를 반영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급훈이 이래도 좋은가. 급훈의 변화는 이상적인 교육의 상(象)이 전인교육에서 입시교육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는 한국사회가 경쟁을 바탕으로 한 승자독식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해 3대 고시를 모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그야말로 ‘개 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의 좋은 본보기가 될 고승덕 의원이 각광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고승덕 공부법, 지금도 통하는 방법일까


사당오락이니 삼당사락이니 하는 격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부는 결국 시간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고승덕 의원은 시간관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최고다. 그는 하루에 17시간을(무려 순수 공부시간이!) 공부했다고 한다. “모든 수험생이 밥 먹고 잠 자는 시간 외엔 공부한다. 그래서 나는 밥 먹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방법을 찾았다. 비빔밥이다. 보통 밥 먹고 소화시키는 데 한 시간 남짓 시간이 걸린다. 나는 책상에서 공부하며 비빔밥을 먹었다. 씹는 시간을 단축하려고 모든 재료를 칼로 잘게 썰어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고기는 가루고기만 먹었다. 그러니까 하루 17시간씩 공부하는 게 가능했다.” 라는 게 그가 17시간을 공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인터넷 유명 입시커뮤니티들에는 이미 ‘고승덕 모드’ 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그의 공부법을 흉내내고 있고 그는 전설을 넘어 일종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씹는 시간이 아까워서 가루고기만 먹었다는 그, 그 공부법을 진정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가.

물론 밥 먹는 시간까지 아끼며 공부한 고승덕씨의 열정과 근성은 대단하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놀랍고, 또 그렇게 공부해서 사법, 외무, 행정 3대 고시를 모두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그이기에 수험생들이 그를 신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과연 그의 공부법이 모두가 본받아야 할 그것일까. 고승덕의 공부법은 신화가 될 수 있을망정 롤모델은 될 수 없다. 따라할래야 따라할 수 없는 공부법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라해서도 안 될 공부법인 것이다.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일주일에 50시간을 공부한다고 한다. 반면 세계 교육 강대국인 핀란드 학생의 일주일 공부시간은 고작 30시간에 불과하다. 이미 한국 사회는 ‘시간’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고승덕의 공부법은 찬양받을 수 없다. 고승덕 열풍은 탈선되어 버린 우리 사회의 미친 교육열을 보여준다. 우리가 정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면 고승덕을 보면서 ‘어떻게 17시간이나 공부를 했을까’라며 그를 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하고도 미치지 않았을까’를 궁금해했을 것이다.


고승덕을 버려라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는 말은, 또 ‘개 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라는 말은 거짓이다. 대학만 잘 들어가면 인생이 술술 풀릴 것만 같던 그 때의 환상은 대학만 들어오면 낱낱이 깨진다. ‘대학만 잘 들어가면’ 이 ‘회사만 잘 들어가면’ 으로 바뀔 뿐이다. 어쩌면 인생 내내 개 같이 공부만 할 뿐 정승같이 놀 순간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만 10분 더 공부하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만 개 같이 공부하면 나중에 정승같이 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한국 사회는 경쟁포화상태다. 모두가 개 같이 공부하고 있는 마당에서는 아무리 공부해봐야 남는 건 자괴감 뿐이다. 수많은 수험생들은 오늘도 ‘고승덕 모드’ 가 되지 못했다며 자괴하고 또 그를 존경하고 있지만, 이미 그들은 ‘고승덕 모드’ 의 나날을 살고 있다. 이제 고승덕을 버릴 때가 왔다. 경쟁이란 이름의 폭주기관차를 멈추고 학교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죽도록 공부해!’ 라는 급훈이 아닌, 세상과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급훈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