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왕: 에그머니나, 너 꼴이 그게 뭐냐?

발자취: 예? 왜요?

자취왕: 며칠 새에 폭삭 늙은 것 같구만. 거 뭔가 꼬질꼬질해보이는 것이...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소근소근)너 무슨 병 있는 건 아니지?

발자취: 아, 무슨 소리세요! 그냥 전 잠을 좀 못 잤을 뿐이에요. ......흑흑, 자취왕님, 진짜 이것 때문에 미치겠어요. 전 자취만 시작하면 이제 대학생활이 필 줄 알았어요. 통학하느라 모자랐던 잠도 충분히 자고, 시간이 많으니까 과제도 잘 해가고! 친구들이랑은... 그래요, 아주 조금만 놀려고 했던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자취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왜 혼자 사는 집 화장실에 칫솔이 10개나 되는 건데요?!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제 방을 학교 앞 공식 숙소+유흥의 장에서 탈출시키고 싶어요.

자취왕: 허어, 혹시 ‘나 자취 시작한다’ 고 신나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건 아니겠지?......  쯧쯧. 제 무덤을 제가 팠구만. 그래도 설마 집의 위치를 스스로 노출시킨 건...... 그래, 집들이를 했다고...... 두루마리 휴지 몇 개와 평안한 미래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렴. 자아가 붕괴되는 걸 조금이나마 막아주겠지. 
너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어. 보통 학교 주위에서 누군가 자취를 시작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놀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지. 가까워, 술 값 아낄 수 있어, 잘 곳 걱정 안 해도 돼, 씻을 수도 있어, 얼마나 좋니. 자취를 갓 시작한, 이 가련한 ‘발자취’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에 또 처음에는 선선히 받아줘.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건 줄도 모르고......

                      아, 좁다, 좁아! 비좁은 방에 그득하구만 아주.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거참.

일단 아직 주위에 자취방을 노출시키지 않은 사람들! 정확한 위치를 절대 알려 주지 말 것!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마치 공식 여관으로 업체 등록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하이에나들을 퇴치하는 데에는 룸메이트가 있다고 하는 것도 좋지.
“나도 오늘 우리집에서 술 마시면 좋겠는데, 룸메 형(29, 까칠한 직장인)이 일찍 주무셔서...... 시끄럽게 하면 좀 그래, 아쉽다.”
밤에 오는 전화는 아예 안 받는 것도 방법이야. 생활패턴을 이 기회에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유흥과 멀어지면서 그 친구들도 네 집을 유흥의 장으로 인식하지 않게 될 거야.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어떤 애는 발도 들여놓기 싫을 정도로 집을 더럽게 해서 퇴치하기도 하더라. 제 말로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라고 하던데...... 문제는 집 주인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는 것 정도?
어쨌든 네 결단이 필요하단다. 무엇 때문에 자취를 시작한 건지 생각해.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 제 삶이 깃들 공간 한 칸은 관리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빨리 ‘네 생활’을 찾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