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저 동물을 좀 길러볼까 해요.
자취왕: 지금도 기르고 있는 것 아니야? 싱크대에 초파리라던가......
발자취: 아니요! 그런 것 말구요. 저녁 늦게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면 아무도 절 반겨주는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문득 너무 외롭네요. 고양이나 강아지라도 키우면 좀 덜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취왕: 전에 우리 아버지가 나랑 소주 한 잔 하면서 이런 말씀 하셨던 게 생각나는구만. 이 집에서 내가 들어오면 그래도 그나마 반갑다고 뛰어나와 주는 건 이제 요 개새끼 밖에 없다고...... 그래, 어떤 때는 사람보다 이런 동물들이 더 큰 위안이 되기도 하지.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은 아직도 원숭이들이 서로 해주는 그 ‘털골라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의 털을 만지는 게 심리적인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도 하더라고. 꽤 그럴듯하지?
하지만 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항상 그들과 함께 할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해. 너와 함께 할 동물이 고양이라고 가정해볼까?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야. 15년 동안 네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네가 교환학생이나 어학 연수같은 이유로 잠깐 외국에 나가 살 수 도 있을 거고-어쩌면 유학을 갈 수도 있겠지 -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몇 번의 이사를 겪을 거고, 또 몇 번의 연애 끝에 혹시 결혼을 했을지도 몰라. 음, 15년이면, 사실 엄마나 아빠가 되어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너는 그럼 그 긴 시간 동안 그 고양이와 함께 살 자신이 있니? 앞으로 1, 2년간의 생활에서 네가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지를 넘어서서, 걔가 늙어 죽기 전까지 네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할 자신이 있어?
"더 이상 키울 상황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죠, 동물보다 사람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길에 내려놓고 왔습니다, 사람을 잘 따르던 녀석이니까 누군가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살길" 애완동물들은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게 개량된 생명들이야. 대책 없는 유기는 살해나 다름없단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한 학기가 끝나 방 주인들이 바뀌는 때면 버려지는 고양이나 개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지. 얘넨 싫증나면 다시 바꿀 수 있는 핸드폰 같은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이야.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인을 기억한단다.
나도 동물을 길러봐서 알아. 조건 없이 나를 믿는 언제나 똑같은 그 눈빛,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것 같을 때 발치에 와 닿는 살아있는 따뜻함이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그것에 위안을 받으려고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렴, 네가 그런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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