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문화가 바뀌고 있다. 엄숙하고 진지했던 기존의 시위문화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연대할 수 있는 시위 문화가 서서히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2008년 촛불 시위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소풍 나온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은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홍대 두리반 농성은 새로운 시위 문화를 제시했다. 두리반 식당을 운영하던 주인 부부는 홍대 주변의 재개발 강제철거에 맞서서, 세입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식당 안에서 농성을 시작 했다. 그리고 농성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철거용역과 대치하고 투쟁 구호를 외치는데서 그치지 않고, 두리반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는 문화 행사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식 강좌가 열렸고, 시 낭독회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나 인디밴드 공연도 자주 열렸다. 특히 작년과 올해 5월 1일에는 ‘뉴타운 컬쳐파티’ 라는 인디음악 페스티벌을 두리반에서 열면서 대중들과의 연대를 극대화하는 ‘즐기는 시위’의 틀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예술인들의 열정과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두리반 식당은 이번달 9일에 재개발 시행사와 합의를 보고 인근에 다시 식당을 여는데 지원을 받기로 했다. 무려 531일의 길고긴 투쟁이었지만 의미 있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문화예술’,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라는 두가지 코드로 기나긴 농성 시위를 성공적으로 해낼수 있었던 두리반의 투쟁 정신이 서울대와, 명동의 카페 ‘마리’에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는 본부스탁이라는 록페스티벌을 열어서 ‘법인화 반대 투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고, 자연스레 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냈다. 카페 ‘마리’는 두리반과 상황이 비슷한 곳이다. 명동 재개발 3구역에 위치한 곳으로서, 두리반과 마찬가지로 세입자들이 헐값의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게 생긴 것이다. 이에 반발한 11명의 상인들은 카페 ‘마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용역이 강제철거를 위해 이 곳에 있던 사람들은 몰아내고 건물에 있던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시민들은 몰려와서 용역을 몰아내고 카페 ‘마리’에 다시 모였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두리반에서와 같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본부스탁은 시위라기 보다는 록페스티벌에 가까웠다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68년도의 대형 록페스티벌이었던 우드스탁을 패러디한 본부스탁은, 서울대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부건물의 잔디밭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말 본부스탁은 시위인지 축제인지 모를만큼 유쾌하고 신나는 곳이었다. 공연을 열광적으로 보면서 몸을 흔드는 사람들, 돗자리를 펴놓고 손을 꼭잡고 공연을 보는 커플, 과일이나 치킨등을 싸와서 소풍 온 듯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사람들 등, 다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프세티벌에, 아니 본질적으로 보자면 법인화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틀에 걸쳐서 펼쳐지는 공연이었는데, 주로 서울대 동문들이 공연을 하는 두 번째 날 공연에 갔다. 3호선 버터플라이, 눈뜨고 코베인, 브로콜리 너마저 등 서로 하는 음악은 달랐고, 메시지의 전달방식도 달랐지만,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만은 동일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법인화설립준비위원회 해체’였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은 이 공연에서 진정한 투쟁가가 되기도 했다. mp3로 들을 때보다, 또는 다른 공연장에서 듣던 ‘졸업’보다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대학마저 기업화하는 ‘미친 세상’에 대한 대학생들의 마음은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서울대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부 건물 역시 그들의 재기발랄한 시위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과 대자보들이 많았다. 인상깊었던 것 중에는 법인화 준비위원회에 학생들이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자 서울대 총장 오연천이 “경륜있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다.” 한 것을 비꼬아서 오연천 총장을 경륜선수에 빗대어서 그려놓은 것도 있었고,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두 분 토론’의 말하는 방식에 맞춰서 법인화에 대한 대자보를 그린 것도 있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서울대 법인화 반대 시위의 상징적인 영상이 된 ‘총장실 프리덤’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의연한 모습과는 다르게, 서울대는 본부스탁이 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본관 진입 길을 서울대학교 버스로 바리게이트 치면서 공연장비가 못 들어가게 하려고 했다. 결국 학생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던 트럭 하나를 밀어 올려서 다행히 공연이 진행된 것이다. 길은 막을지언정, 학생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본부스탁은 대학생 시위의 하나의 지표점이 될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형태라고는 하지만, 한대련 소속 여자 학우들이 등록금 투쟁때마다 삭발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보다 유쾌한 시위방식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되는 방식을 지양하고 다같이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의 시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대학생들은, 대학생들만의 패기와 유머감각을 백분 발휘해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더욱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시위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비록 서울대 학생들의 본부점거는 끝이났지만 본부스탁의 ‘유쾌한 시위’의 정신은 계속 될 것이다.



제2의 두리반, 카페 ‘마리’

21일 밤에 찾아간 그 곳에는 대략 30명 정도의 사람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 간 것이었지만 두리반 투쟁을 주도한 음악인 중 한 명인 단편선씨와 일면식이 있어서, 그를 통해서 두리반 투쟁을 주도했던 사람들을 소개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단편선 씨는 “과거의 두리반의 상황이나 현재의 카페 ‘마리’나 비슷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재개발 사업, 도시계획 사업에 있어서 상가세입자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상가세입자에게는, 재개발에 대한 거의 모든 절차가 끝난 뒤에야 철거를 하라고 알려준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한 권리를 주장할 틈도 없이 강제 철거의 위기에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명동에서도 두리반에서 해왔던 운동과 비슷한 맥락에서 ‘명동 해방 전선’을 만들어서 7월 2일부터 카페 ‘마리’에서 파티를 벌이면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 곳에 같이 있던 대학생들은 오늘은 철거용역들이 돌아다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철거용역들이 언제 카페 ‘마리’에 들어와서 이 곳을 철거하고 다 깨부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이 여기 와서 잠시라도 같이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며 주변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오라면서 맥주를 따라주었다. 12시가 넘어가니 집에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여기로 자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자는건데, 집에서 잠을 자나, 마리에서 잠을 자나 똑같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온 맥주와 여러 가지 음식들, 방금 전 안효상 사회당 대표가 사온 치킨을 보니 그 곳은 문이 없고 가격만 안 붙어있을 뿐이지, 아직 카페가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케이크에 초를 올려놓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진보 정치 세력에 관한 이야기, 대중 음악 이야기, 연애에 관한 이야기등 가지각색의 주제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연단에서 구호를 외치면, 다른 사람들은 그 구호를 따라서 외치는 수직적인 분위기의, 주최자와 참여자가 분리된 형태의 시위가 아니었다. 운동권 조직이 주도적으로 카페 ‘마리’의 농성장을 지키는 것도 아니었고, 아무나 잠시 와서 재미있게 놀다 갈 수 있는 아주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사실 여기 농성장에 있는 것이 힘들고 고된 일이 된다면,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서 강요받는 분위기라면 이 투쟁을 오랜 시간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다행히 카페 ‘마리’의 분위기는 편안했고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1시가 넘으니 건물 밖에 핀 돗자리에서 잠을 청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민중 가요도 불렀지만, 장기하 노래도 불렀고,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도 불렀고 심지어 2ne1이나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노래도 불렀다. 엠티에 온것인지 농성장에 온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다말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 안타까운 현실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 씁쓸해졌다.

 



새벽 3시가 지날 쯤 이번 명동구역 재개발의 사업주중 하나인 기업은행 은행원중 한분이 오셔서 밤샘하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전달하시고,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명동3구역 투쟁에 지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신도 기업의 노동자로서, 그리고 카페 ‘마리’를 이용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일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것이 연대라고 믿는다. 익명의 은행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오셔서 술이든 음료수든 과자든 먹을거리를 주고 가셨다.

날은 밝아오고, 비가 오려고 해서 돗자리를 치우고 다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빠른 시일내에 이 곳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카페에 온 기분으로 시위하는데 뭐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얼마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명동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인 티벳 음식점인 '포탈라'에 대해서 방송되었는데, 그 곳에 가서 맛있게 티베트 음식을 먹고, 카페 ‘마리’에 와서 맥주 한잔 걸치면 자연스레 이번 투쟁에 대한 연대를 하게 되는 셈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


본부스탁이나, 두리반과 카페 ‘마리’ 농성이 시사하는 바는 시위 자체가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서 시민들의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데 있다. 물론 서울대의 경우 본부점거를 풀었으나, 앞으로 이런 식으로 유쾌하게 법인화 반대 투쟁을 전개해 나간다면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특정한 조직이 시위를 전면적으로 책임질 경우, 표면적인 투쟁동력이 떨어지거나 조직 내 구성원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경우 시위를 지속해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연대하는 경우는 다르다.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고, 보다 활기차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시위가 진행될 수 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나, 명동 재개발에 대한 세입자들의 농성은 사실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다. 권력을 가진 위정자에게, 돈을 가진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것이므로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주변을 더 둘러보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서 175일 동안 농성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용역이 투입되어서 노조원들을 때리고 있는 유성기업, 1200일 동안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재능교육 노동조합 등 노동자들의 파업 역시 힘겹고 끝이 안 보인다.

그렇기에 시민들이 직접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해서 지속가능한, 즐거운 시위를 만들어내야만 투쟁이 지속될 수 있다. 시위 공간이나 농성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의 버스’나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에서 활약한 ‘날라리 외부세력’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즐거운 시위는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시민들이 오랜 기간 시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참여할 때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시위하는 곳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소풍 온 듯이 도시락도 먹자. 가끔은 파티도 벌이고 밴드도 초대해서 신나게 춤도 춰보자. 정치권력과 거대자본의 옹졸함을 마음껏 비웃으면서 제대로 놀아보는 거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 것이다. 승리의 그 날까지 시민들은 계속해서 모여들 것이고, 언제나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시위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지속가능한, 즐거운 시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