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성공적으로 끝이 난 MBC 무한도전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경연에 오른 7팀의 공연도 대단했지만 단연 방송의 주인공은 방송 말미에 등장한 유재석과 이적, 그리고 그들이 부른 ‘말하는 대로’였다. 관객들도 무대 위의 수많은 장치들도 모두 다 사라지고 칠흙 같은 어둠 속에 피아노 한 대와 두 사람의 노래만이 빛을 밝히는 순간은 마치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를 연상케 했다.

음악적인 완성도도 그렇지만 사실 ‘말하는 대로’가 화제의 중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출판계에서도 핫한 아이템인 ‘청춘’을 가사에 녹여낸 까닭이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걸 믿으라는, 20대 청춘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 게다가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유재석과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적이 자신들의 20대 이야기를 통해 20대를 위로하는 컨셉. 실제로 수많은 청춘들이 그리고 언론들이 두 사람이 주는 감동에 주목하고 수많은 2차 담론들을 만들어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

‘말하는 대로’는 이렇게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들으면 편안함이나 위로받는 느낌보다는 불편함이나 꺼림칙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혹자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예능을 예능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거나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는 눈길을 보낼 수 있지만 그걸 다 감안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건 거짓말 같았지 고개를 저었지”

‘말하는 대로’의 가사는 화자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유재석의 아이디어를 통해 이적이 완성한 이 소절은 매일 밤 ‘내일 뭐하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자신들의 20대 시절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나 역시 20대를 지내왔으므로 20대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너희의 마음을 안다는 공감과 위로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일 무얼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청춘이라면 누구나 뼈 속 깊이 와 닿을 만한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

1절의 감동은 2절에서 무너지고 만다. 20대, 잠드는 시간이 항상 불안했던 이유를 ‘노력 부족’에서 찾는 순간 이 노래는 판타지가 되어버린다.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믿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더라고, 마치 한 번도 노력에 배신당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갑작스럽게 ‘신화’를 이야기한다. 힘든 시간은 견뎌내면 된다고, 지나고 보면 조금은 나아지더라고 어깨를 툭툭 쳐주는 정도의 위로로는 부족했던 걸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으니 앞만 보고 너의 길을 가라는 조언은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불편하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일면 희망적이지만, 이미 노력에게 배신당하는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었던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 구조상 누군가는 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20대에게는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절망적이다.
 
 

‘말하는 대로’와 ‘아프니까 청춘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나도 네가 했던 그 경험을 해봤고 그게 얼마나 아픈 건지 잘 알아. 하지만 잘 극복해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어. 내가 너를 위해 비밀을 알려줄게. 그러니 내가 말하는 대로 해봐.”

‘말하는 대로’가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는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바로 자기계발 류의 책에서 읽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이것은 격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매개로 하여 불가능한 신화를 파는 것이다. 의도적인 사기 행위는 아닐 것이다. 보통 이러한 신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그 신화가 현실에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를 경험한, 다시 말해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2011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저자인 서울대학교의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부 졸업이라는 최고의 학벌을 소유한 매우 특수한 유형의 사람이다. 그가 책에서 스스로 기록하고 있듯 그의 인생은 꽤나 순탄하게 풀린 인생이었고 누군가에겐 전설적인 느낌을 줄만큼 사회적으로 성공을 인정받는 인생이다. 

서울대라는 학벌 혹은 비빌 언덕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아픔의 본질을 그가 100%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대학 시절에는 스펙 말고도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는 그의 위로에 서울대 학벌을 가진 청춘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벌 문제라는 계급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놓고 봤을 때 상황과 처지가 온전히 같은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차이를 무시한 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상대의 힘듦을 다른 것으로 치환하거나 축소하거나 혹은 부풀리는 모든 행위는 사실 좀 주제넘은 것인지도 모른다. 486세대가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땐 안 그랬는데’ 하는 것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엄마는 공부 잘 했었는데 넌 왜 그러니’ 하는 것이나 그런 모든 상황들이 사실 그렇다.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만 받을게요

‘말하는 대로’ 결과물 그 자체가 약간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의도부터 불편함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게다. 실제로 무한도전 방송분 중에서 유재석은 20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재석도 김난도도 그리고 상대방을 걱정하고 조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글은 그들의 조언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거나 혹은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고다.

걱정해주는 것 정말 고맙다. 하지만 마음만 받고 싶다. 어떤 권위자의 조언과 삶의 방식을 따라하거나 그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하나하나 부딪혀나가며 내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유재석이 알고 있는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노래 하나를 듣는 것만으로는 책 하나를 읽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까, 스스로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