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었다. 특히 2011년은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대중화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2001년 한 해에만 1500회 이상의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비로소 공론화되었다. 그리고 그 후 10년이 지났다. 2007년 노무현 정권이 종교적 사유 등에 대한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법안을 내놓으며 이 문제에 한 획을 긋는가 싶었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백지화되었다. 이 문제로 한 해에 1,000명 가까운 전과자가 양산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최대 인권 현안임을 보여준다. 다소 어렵고 장황한 이 문제를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본다.

Q. 2001년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대중화되었다고 했는데, 그럼 그 전에는 병역거부자들이 없었나요?
A. 에이, 아니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해방 직후부터 존재했어. 단지 2001년에 「한겨레21」에서 약 1600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되어 있다는 기사를 썼고 그 기사 때문에 이 문제가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거지.

Q. 헉, 1600명이요? 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 단체에서 몇몇 광신도들이 그런 짓을 하는줄 알았는데, 꽤 많네요?
A. 그렇지.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약 850명이 이 문제로 수감되어 있단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라……우선 이 문제는 기독교 내부문제니까 건들지 않을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주제로 글 쓰는 것도 무서워서 더 건드리고 싶진 않아.) 다만 이제 여호와의 증인 신도만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건 아니야.

Q. 아니에요? 전 사실 그렇게만 알고 있어서 이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아휴 저 놈의 새끼들은 다 감옥에 보내야지…하고 생각했거든요. 신자 아닌 사람들도 병역을 거부하나요?
A. 그럼.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도 그 영향이 크지. 2001년도에 불교 교도인 오태양씨가 종교가 아닌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어.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사람으론 최초였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의 병역거부자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지만 외국의 경우는 달라. 심지어 독일 같은 경우는 헌법에 병역거부권이 보장되어 있기도 하지.

Q. 에이, 그래도 다른 나라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나라는 엄연히 전쟁 중인 분단국가잖아요. 종교든 양심이든 평화주의든 그런 이유로 병역을 ‘기피’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예? 그렇잖아요?
A. 사실 이게 이 문제의 핵심이지. 소는 누가 키우냐는게……가 아니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누가 군대를 오겠느냐는거.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쟁 중인데.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원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주로 전시에 터지는 문제였어.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시 징병제를 실시하며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지. 다만 병역을 강요하지 않되 비전투임무는 부여하는 형태였어. 다만 이때는 종교적 교리에 따른 병역거부만 허용했던 것이 2차 세계대전 때는 개인적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까지도 확장되고 민간 대체복무를 인정했다는 게 차이점이지. 영국도 미국과 비슷하고. 심지어 우리보다 더 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도 부분적으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지.

Q. 뭔가 은근슬쩍 질문의 요점을 벗어난 거 같아요. 아니, 막말로 내가 “나 평화주의자인데 군대 안 갈라요” 하고 드러누우면 어쩔건데요. 평화 싫어하는 놈이 세상에 어딨으며 자기가 양심 없다고 하는 놈은 또 어딨을까요. 제 생각엔 대체복무제가 실현되면 현역복무자가 확 줄 거 같아요.
A. 과연 그럴까? 넌 군대에서 22개월 보낼래? 아니면 저기 섬 요양소 같은데서 33개월 보낼래? 어지간한 사람이면 전자를 택할텐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안 갔다고 하면 어떤 소리를 듣는지 너도 알잖아? 그걸 아는 젊은이들이 군대를 안 가려고 할까? 참고로 대만에서도 이 점을 우려했었지만 현역복무보다 1.5배가 긴 대체복무 신청자는 오히려 미달이었대.

Q. 음, 그래요? 아니 근데 왜 그럼 우리나라는 여지껏 대체복무를 인정 안하고 있대요? 게다가 지난 10년은 인권 분야에 있어서는 꽤 진척이 많았던 시기였을텐데?
A. 그건 그렇지. 대체복무제 입안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다 네가 물어본 것들이야. 특정 종교에게만 혜택이 간다는 비판,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는 점, 거기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이미 군대를 경험했다는 점까지. 사실 북한문제, 종교문제, 군대문제는 어느 술자리에 가던 잘못 다뤘다간 싸움 나는 주제잖아? 그러니 반대여론이 더 높을수 밖에 없지. 그래도 차츰 나아지고 있는 추세야.

@프레시안

Q. 뭔가 눈에 띄는 변화가 있나요?
A. 획기적인 변화는 지난 2007년에 있었지. 비록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두 배라, 징벌적 성격이 있다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국방부가 대체복무를 2009년부터 추진하는 방안을 내놓았어. 그런데 우리 ‘가카’께서 취임하시면서 물거품이 됐지.

Q. 아 역시 우리 대통령, 킹왕짱 굳. 저도 2007년에 그 발표는 봐서 아는데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라는 단서가 달렸잖아요. 이명박 대통령 때 여론조사를 했는데 대체복무제에 대해 국민 반대가 68%였대요. 그러니 대체복무 백지화는 맞는 결정 같아요.
A. 글쎄…그보다 앞서 2007년 여론조사 때는 오히려 대체복무제 찬성이 50%가 넘었어.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여론조사 불과 3개월 전에도 찬성은 56%였지. 아마추어같이 왜 이래? 여론조사, 거짓인거 알면서…

Q. 그래도 그렇게 여론조사가 오락가락하는건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뭐 대체복무제가 언젠가는 시행되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거죠.
A. 그래? 너 우리 가카께서 지금 강조하는 게 뭐야. 글로발 스땐다아드 아니니(발음 죽이지?)? 너 지금 졸지에 G20 세대 됐잖아. 오히려 대체복무제는 늦으면 늦었지 빠른건 아니야. 볼래? 징병제가 아예 없거나 대체복무제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덴마크, 스페인……하악하악, 그 반대를 말하는게 빠르겠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처벌하는 나라-북한, 중국, 싱가포르,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수단, 이란, 이집트 등, 아, 그리고 한국. 그리고 UN은 벌써 수차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한 것에 대해 배상하고 관련 법규를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참고로 전 세계에서 이 문제로 수감된 사람의 80%가 한국에 있어.) 이제 네가 대답해볼래? 과연 어떤 게 시대정신이고 저 나라들 중 어느 쪽이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일까?

Q. 아우 참, 치사하게 그렇게 나라를 나열하면 당연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게 맞는 것 같잖아요.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 우리나라는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에요. 게다가 국민정서도 고려해야 하구요. 안 그래도 병역거부자들을 두고 ‘극심한 이기주의자들이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찾으려고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과연 그럴까? 내 생각엔 이거야말로 정말 무지에서 나오는 편견 같아. 얼마 전 변호사 한 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지. 군사훈련은 고작 4주고 3년 동안의 공익 법무관 복무만 마치면 평생이 보장되는데 과연 그가 이기주의자일까? 사실 단순히 군대가 가기 싫은 게 병역거부의 이유라면 감옥에 가는 거 보다야 좋은 방법이 수두룩하지. 그럼에도 그들은 단 4주간의 군사훈련도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한거야. 이것을 두고 이기주의라고 하는 건 조금 지나친 발상 같다.

Q. 아휴, 이제 슬슬 스압이 생길 지점이네요. 어려운 문제라 기껏 가상 인터뷰 방식으로 풀어봤놨는데 무용지물될 판이예요. 아쉽지만 이쯤에서 마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알려주고 싶은게 있나요?
A. 음…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평화에는 찬성할거야.(가끔 전쟁광신도도 보이지만) 단지 한국에서 너무나 신성화 되어 버린 병역문제와 맞물려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뿐이지. 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많이 묻고,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 단지 남의 말만 듣고 ‘이단 새끼들!’, ‘사회봉사 30년 하면 인정해주겠음ㅋ’ 따위의 말로 그들을 바라보기엔 너무 그들의 상처가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