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막말남’ 사건이 엄청난 화제가 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지하철 막말남’의 신상정보가 모두 밝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네티즌들의 능력이 참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어디서나 품행을 단정히 하고 다녀야겠다는 경각심마저 생겼다. 그런데 며칠만에 신상정보를 잘못 털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지하철 막말남’으로 지목된 ‘한양대학교 기계공학부 4학년 변길섭’은 한양대학교 측에서 확인해본 결과, 한양대학교 학적에 없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가상의 인물과 애꿎은 한양대를 욕하는데 헛되이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변길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이름만으로 스타리그 우승자 출신의 프로게이머 변길섭의 미니홈피가 테러를 당하면서 이번사건의 신상털기는 한편의 코미디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인터넷 상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돌팔매질을 하는 ‘신상털기’가 이제는 관행화 된듯하다. 네티즌은 신상털기를 할 때마다 정의의 사도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의의 사도가 칼을 휘둘렀는데 빗나간 것도 아니고 아예 허공을 향해 휘두른 꼴이 되어버렸다. 저번에는 칼이 빗나가서 사람 한명을 억울하게 매장시킬 뻔 한 적도 있다. 고대의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신상 털기를 당했던 사건인데, 알고 보니 신상을 털린 사람이 성추행과는 관계없는 무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신상정보가 공개되어 수많은 욕설과 비난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신상을 턴 네티즌 20명을 고소한다.




▲네티즌이 만든 신상털기 프로그램 화면




신상털기는 호기심 충족 수단일 뿐이다


신상털기에 대해서 ‘공권력이나 기존언론에 대한 불신’, ‘한국 사회에 정의가 없다는 인식’ 등으로 인해 네티즌이 스스로 심판하고 죄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네티즌의 공격 욕구와 배설욕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인물의 경우에도 신상털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기심 충족 수단으로 신상털기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네티즌들이 신상정보를 털었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길의 첫사랑 김효진씨를 찾으러 그녀의 집에 찾아가는 상황이었는데, 거기서 김효진씨의 동생인 김형선씨를 만나게 된다. 김형선씨는 의사라는 점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노홍철이 직접적으로 구애를 펼치면서 화제가 된다. 네티즌들은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신상털가라는 방법으로 나타낸다. 그녀의 개인홈페이지의 주소를 찾아내고 학교가 어딘지, 앞으로 근무하게 될 곳은 어딘지, 애인의 유무여부까지 전부 알아낸 후 일상적인 사진까지 전부 찾아서 퍼트린다. 

루저 발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했던 이도경 역시 네티즌의 잣대로 심판해버렸다. “180 안되는 남자는 루저” 라는 발언에 흥분한 네티즌들이 그녀의 고등학교 사진과 싸이월드 주소와 과거에 쓴 모든 글까지 찾아내면서 그녀를 ‘천하의 몹쓸 된장녀’로 만들어버렸다. 그 당시 분위기는 정말 이도경이라는 한 사람을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시키려고 작정한 듯 했다. 비슷한 맥락의 사례로, 케이블 방송에 나와 “부모의 용돈으로 명품을 구입,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만 4억원대” 라고 말하여 4억명품녀 라고 불리던 사람이 신상털기를 당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심지어 해킹까지 당해서 신상을 털렸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말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네 마네 하는 사람들이 신상털기를 주도하는 네티즌들과 그런 행동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동조하는 무리들이다.

한편 이런 일은 유명인이나 티비 출연자가 아니라 일반인한테도 벌어질 수 있다. 나는 예전에 디씨인사이드의 한 게시판에서 욕이나 인신공격이 아닌, 단순히 주류 여론과 다른 의견의 글을 몇 번 써서 크게 비난을 받은적이 있다.  단순한 비난으로 그쳤던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은 내 아이피 어드레스를 구글링(구글 사이트에서 검색하는 것) 하여서 나로 추정되는 신상정보를 찾아냈다. 그런데 그 신상정보는 내 것이 아니고 애완동물 갤러리에서 고슴도치를 파는 아저씨의 것이었다. 아이피 세자리가 똑같다는 이유로 고슴도치 파는 아저씨가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고슴도치 아저씨의 핸드폰 번호와 주소 등이 공개된 것을 보면서, 네티즌들에게 혹시 욕설이 담긴 전화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네티즌이 죄인들을 심판하리라

그래도 신상털기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사람들도 있다. “신상털기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이번 ‘지하철 막말남’ 같은 경우에는 좀 당해 봐야한다.” 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하철 막말남이 전국에 신상정보가 공개될 정도의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현재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범죄자는 성범죄자나 언론에 이름이 알려지는 강력범들 밖에 없다.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이중처벌 논란, 다른 범죄자들과의 형평성 등의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예방’이라는 중요한 사회의 의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적인 합의를 거친 이후에 시행되었다. 이렇듯 누구나 악질의 범죄라고 생각하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도 합목적성을 따져야하며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지하철 막말남의 신상정보 공개에 그런 과정이 있을리 만무하다.

물론 ‘지하철 막말남’이 일반인의 도덕적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상털기를 해서 죄의 대가를 치루게 한다는 논리는 과격하고 원시적이다. 우리나라는 죄형법정주의를 형법의 기본원칙으로 채택하고 있으므로 국가권력이나, 특정 세력에 의한 자의적인 처벌이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무례한 사람을 처벌 하려고 해도 법에 의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대 사회는 다수의 도덕적 잣대가 법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군중이 우르르 몰려가 저잣거리에서 한사람을 두고 돌팔매질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또한 그런 방식은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수 있으므로 상당히 위험하다. ‘지하철 막말남’의 죄 값을 치르게 하고자 했으면 지하철에 있던 사람들이 112에 신고를 하든가, 하다못해 기관사에게 연락해서 경찰에게 인도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지하철 막말남에게 욕을 먹은 할아버지가 고소를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여대생 A씨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기차를 타고 가다가 뒷자리에 있던 아이 한명이 시끄러워서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실례지만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라며 공손히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A씨의 옆좌석에 있던, 자식 둘을 데리고 탔던 아주머니가 “이제 나한테 조용히 하라고 하겠네” “애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줄 알아” “너 몇 살이야” 이런 말을 내뱉다가 갑자기 A씨의 뺨을 세게 때렸다는 것이다.

아마 누가 이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더라면. 인터넷에 유포되고도 남을만한 사건이었다. 이렇듯 황당한 일을 겪은 A씨는 열차안에서 경찰에 연락해서 바로 고소를 했다. 그런데 A씨가 여러 차례 그 가해자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해본 결과, 가해자 아주머니는 “평소에도 감정기복이 심하며, 정신적으로 안정되있지가 못하다.” “저도 그 때 왜 그런 행동을 한지 모르겠다” 며 A씨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듣고 나니까 A씨는 화가 풀려서 고소를 취하했다.

‘지하철 막말남’도 동영상만 놓고 보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된 그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이 있거나, 자기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렇듯 속칭 ‘정신 나간’ 사람 하나 놓고, 신상을 털고 가상의 실명을 거론하며 온갖 욕을 퍼붓는 것은 단순한 배설 행위로 밖에 안 보인다. 뉴스에 나오는 살인자에게도 그렇게 입에 담기도 심한 욕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신상털기는 폭력이다

다수의 힘이 모이면 누군가를 사회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권리마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신상털기 행위에 전제된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신상털기를 하는 네티즌들은 무한한 권리만 가지려고 할 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안 지려고 한다. 특히 신상털기를 잘못해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를 볼 때 신상털기를 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소를 안 하면 신상을 잘못 턴 일에 대해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신상털기는 네티즌이 고안해낸 나름의 ‘정의 실현 방법’이 절대 아니다. 신상털기는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하고 특정인을 가쉽 거리로 소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단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신상털기를 도구로 이용해 특정인을 중죄인처럼 몰아갈 때는 정말 섬뜩하다. 또한 신상털기에는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없다. 또한 폭행 동영상이 퍼지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신상을 턴다. 누굴 위한 신상털기인가?

그럴싸한 명분만 내세우는 신상털기는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무턱대고 알 권리만 주장할 뿐, 개인의 사생활은 안중에도 없는 신상털기는 절대로 옹호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