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임재범이 불러 화제가 된 ‘여러분’에는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라는 가사가 나온다. 임재범과 같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야 그 물음에 ‘바로 여러분’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나, 일반인들은 그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특히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나 애인과 연락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라디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오전 2시부터 5시까지의 라디오 분위기는 낮 시간대의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낮은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주면서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깊은 유대감을 맺어가는 것이 이 시간대 라디오 방송의 특징이다. 디제이는 청취자 바로 옆에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은밀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정도다.) 그리고 청취율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요즘 쉽게 들을 수 없는 명곡이나, 숨겨진 보물 같은 곡들도 많이 나온다.


 
Magic Hour, '이주연의 영화음악‘


특히 MBC FM4U (서울기준 91.9mhz)에서 새벽 3시에 방송되는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심야 라디오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DJ 이주연 아나운서의 나긋나긋하고 따뜻한 목소리, 사연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청취자와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방식, 다른 방송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좋은 영화 음악 선곡, 이 세 가지 요소가 깊이가 있으면서도 편안한 방송을 만들어주고 있다.
 
원래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2006년 10월부터 쭉 새벽2시를 고수해왔지만, 이번 MBC 라디오의 개편으로 새벽3시로 밀려나게 되었다. 청취자로서나 DJ로서나 불만이 많은 시간이동이었지만 이주연 아나운서는 개편 후 첫 방송 오프닝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민박집, 손님들이 너무 많이 올까봐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간판을 달았답니다. 약도도 조금 복잡해서 헤매지 않고 찾아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어쩌다 한번 제대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주인 아저씨가 이렇게 칭찬해줘요 ‘재능이 있는 손님이네요’ 일본영화 안경 中)...... 그 어떤 이유로든 지금 이 시간에 저와 함께 있다는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은 아직 모를 수도 있지만 다들 재능이 있으시네요. 여기 함께 모이실 재능이 있습니다.” 
                                                                                                              
 
찾아오기는 힘들지만, 한번 제대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면 칭찬까지 해주는 민박집, 그것이 ‘이주연의 영화음악’의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새벽 3시는 듣기 힘든 시간대이지만, 그 시간대에 방송을 들어보면 이 방송 자체가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새벽3시에 어울리는 포근한 방송이기도 하지만, 새벽3시라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도 라디오를 켜놓고 똑같은 음악과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동질감을 느낀다는 점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밤 같기도 하고 새벽 같기도 한 새벽3시 'Magic Hour'에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이주연 아나운서의 말처럼, 새벽3시라는 시간은 뭔가 묘한 힘이 있다.
 



귀로 보는 영화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위에서 말했다시피 단지 심야 라디오의 정석이기만 했다면 큰 매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주제가 있는 방송이다. 다른 방송은 단순히 컨셉이 있지만, 이 방송은 ‘영화’라는 중심주제가 방송 전반에 미치고 있다. 1주일에 4번, 영화관련 코너가 있고, 음악은 한번이라도 영화에서 나온 음악을 튼다.
 
다른 방송들이 대체로 이 시간대에 ‘사연 다음 음악’, ‘음악 다음 사연’ 이런 식의 정형화된 방송을 한다면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 하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도 있고 영화 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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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연상녀 영화남’ 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어떤 특정한 ‘주제어’를 주면 청취자들이 그 주제어와 관련된 영화를 생각해서 사연을 보내는 것이다. 듣다보면 과거에 봤던 영화들과 그 영화에 삽입된 영화음악들이 나와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요일은 ‘꽃보다 영화’인데 이 방송의 작가인 김세윤 작가가 직접 나와서 최신영화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목요일은 귀로 보는 영화라는 코너로써 주요 대사와 줄거리,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한 시간 동안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토요일은 ‘김교수의 은밀한 영화 이야기’라는 코너가 있는데 명작 소개와, 그 명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감독이나 배우를 초대하거나 인터뷰하는 시간도 갖고, (아마 송혜교가 라디오에 나온 경우는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유일할 것이다.) 영화 페스티벌이 있다면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서 공개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가장 대표적이고 현대적인 시각 매체인 영화를 라디오로 접한다는 것이 새롭고 재미있는 기분이 들게 되어서 새벽의 지루함도 없애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룬다는 것은 방송의 격조가 한층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영화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제각각의 시선이 담겨있다. 또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영화이다. 그렇기에 라디오에서 영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고민해보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특별히 따뜻한 이유

 
얼마 전 이주연 아나운서 전에 영화음악을 진행하던,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화제가 되었다. 그 오프닝 멘트의 내용은 당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해서, 1백여일을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씨를 추모하던 내용이었다.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주연의 영화음악’ 역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진 중공업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직접적으로  강한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진 않지만, 평소에도 인권문제나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던 방송이었다.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방송이다 보니, 가끔은  외부에서나 방송국 내부적으로 압력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 할 때도 있었다.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특별히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있었다. 이주연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좋아서, 또는 음악의 선곡이나 진행방식이 좋아서가 아니다.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처지에 분노하고 그들을 감싸주려고 노력하는, 즉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많은 청취자들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안아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새벽 3시에 깨어있다면, 이 글을 기억하고 ‘이주연의 영화음악’을 꼭 들어봤으면 한다. 방송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