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을 가다가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애들이 동그랗게 모여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승패가 잘 나지 않을 것 같은데 패를 나누지 않고 끝까지 가위바위보를 했다. 한 2,3분 정도 지난 뒤 한 녀석이 걸렸다. 함성소리와 함께 이긴 아이들은 가방을 벗어 던졌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녀석은 울상으로 다른 아이들의 책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긴 아이들이 외치던 한마디, “나만 아니면 돼~” 초등학생들이 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요일 주말마다 듣던 말을 어린 애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70분 동안 진행되는 KBS <1박 2일>은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늘 20%가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1박 2일. 처음에는 한 주간의 피로를 잊고, 1박 2일 멤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시청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점점 강도가 세지는 경쟁심 조장과 각종 내기들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는 시간대인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복불복? 나만 아니면 돼!
사실 1박2일이 처음 방영될 때부터 무조건 이긴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게임에서 이긴 멤버들만 밥을 먹고, 나머지 멤버들은 옆에 멀뚱멀뚱 앉아서 입맛을 다신다. 일찍 일어나 아침 미션에 성공하지 않으면, 구구단을 외우는 게임에서 구구단을 못 외우면 밥도 못 먹고 잠도 편히 잘 수 없다. 방송은 ‘이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는 메시지를 던지고, 적자생존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1박 2일 멤버들은 점점 독해지고 있다.
1박2일을 촬영한지 4년 차에 접어든 멤버들은 기존 미션에 이미 적응한 상태다. 그래서 제작진은 예전보다 적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하도록 요구한다. 휴게소에서 3분 안에 우동사오기, 갑자기 가위바위보에 진사람 낙오시켜서 혼자 베이스캠프 찾아오게 하기 등 보통 사람들의 여행이라면 단지 ‘재미’있지만은 않을 미션을 시킨다. 처음에는 멤버들도 당황스러워 했고, 시청자들도 제작진이 요구하는 미션들이 혹독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무리한 미션들이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자, 1박2일 멤버들도 그 상황을 즐기고 시청자들 역시 멤버들이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게다가 1박 2일은 다른 예능프로그램에 비해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을 선정할 때 긴장감이 고조된다. 일명 ‘몰빵’으로 한 사람이 모든 피해를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안 걸리면 돼” 라는 생각이 멤버들 사이에 팽배해지게 된다.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입수를 하건, 텐트도 없이 밖에서 자건 걸리는 사람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미션의 강도는 점점 세진다. 여행을 통한 남자들 간의 우정, 의리 등 초창기 방송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1박2일만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상대팀을 이겨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만 자주 볼 수 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스텝 80명이 야외취침을 하고, 전원 입수를 해도!
1박2일,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송이 되길
요즘 모든 방송사에서 ‘오디션’ 형식을 이용해 무조건 적자생존의 상황으로 참가자들을 밀어 넣고 있다. “이기지 않으면 내가 떨어진다. 떨어지는 사람의 상황은? 나만 아니면 돼” 모두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상황에서 굳이 1박2일까지 경쟁체제에 편승해 더 자극적인 경쟁을 주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많이 보여줬으니 이제는 ‘여행’을 배경으로 남자 6명이 어울리면서 경쟁만 부추기는 현실 때문에 잊고 살게 되는 소중한 것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책임감을 요구받는 일이다. 같은 형식으로 4년이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1박2일 멤버들과 제작진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사랑받고 수준 높은 방송이 되기 위해 1박2일이 경쟁이라는 하나의 테마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미칠 수 있는 테마를 발견했으면 한다. 그래서 전국민이 보면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1박2일 멤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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