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요즘 사극 열풍이다. 매주 공중파 방송3사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사극을 방영하여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당긴다. 사극에 나오는 갖가지 호화로운 소품들과 멋진 전쟁장면에 우리는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여러 사극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신라시대나 조선시대나 왜 소품들이나 말투가 다 비슷하지? 내가 잘 모르는건가..'

어느 시대에서 오셨어요?


(좌: 주몽, 우: 계백)
과연 겉보기에 시대를 구분 할 수 있는가?

휘황찬란한 갑옷, 상투를 튼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머리모양, 왠지 익숙한 현대어, 현란한 검술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극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러한 사극은 굉장히 친숙하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자.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교과사에서 보았던 선조들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극은 어딘지 모르게 무협지의 모습을 닮아있다. 과연 사극드라마는 고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철저한 고증?

"전 새로운 사극이 시작된다고 하면 먼저 그 작품의 고증 수준을 알아봐요." (사극매니아 최모군)
최근 새로운 사극이 방영되기 전이면 사극을 즐겨보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이번 사극은 고증이 잘 되었다, 의상의 재활용이 눈에 띤다, 너무 상상적인 요소가 많다 등.' 이들은 이런 생각을 정리해 방송국을 상대로 집단 항의마저 펼친다. 이렇게 사극을 즐겨보던 시청자들의 안목이 높아짐에 따라 사극을 방송하는 각 방송사들 역시 이러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맞추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방송사의 노력과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고증의 시도는 잠깐의 유행에 불과 했으며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  좌 : 근초고왕     중: 광개토대왕      우 : 실제 고구려 개마무사 )

가장 오른쪽이 실제 고구려 개마무사의 벽화이며, 가장 왼쪽이 최근 고증이 잘 이루어졌다고 칭찬을 받은 드라마 근초고왕의 고구려국왕 고국원왕의 갑옷, 그리고 가운데가 최근 방영중인 광개토대왕의 갑옷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너무나 그 모습의 정도의 차이가 확연하다.


역사적 고증과 시청률은 미지수.

이러한 시청자들의 요구에도 왜 사극의 고증은 잘 이루어 지지 않을까? 제작자에게 있어 사극의 고증이란 '계륵'이다. 사극이라는 장르에 있어 역사적 고증은 필수이지만 고증에만 너무 치우칠 경우 극의 전개에 있어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인 사료의 부족으로 중간 중간 상상적 요소를 가미 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가미의 정도가 사극과 무협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게 된다. 결국 제작자는 고증이라는 부분보다 극의 전개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의상과 일기당천의 액션을 보여줌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린다.


(다른 시대 동일한 의상)


그렇다면 외국은?


(  좌 : 일드 천지인      중: 실제 일본 전국시대 갑옷       우: 미드 로마)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는 매년 NHK에서 사극을 단 1편만 제작한다. 사극만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테랑 배우들을 대거 등용하고 드라마의 OST도 세계적인 작곡가에게 부탁한다. 무엇보다 소품의 경우 철저한 고증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이들은 드라마가 매화 끝날 때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한 것들(유적지와 유물들)을 실제 소개해주는 형식으로 보여주며 신빙성을 더한다. 미국의 경우 별도로 사극이라는 장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시대극으로 제작되어지곤 하는데, 이들이 만든 시대극은 영화스러운 드라마를 제작하는 미국답게 웅장한 OST 그리고 화려한 액션에 철저한 고증을 더한다.

고증되어지지 않은 무분별한 사극제작 이제 그만!

외국의 경우에도 사극이라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장르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매년 1,2편의 사극만을 제작함에 따라 그 질은 매우 높다. 오랜 제작기간을 통한 철저한 고증과 그에 따른 맞춤 의상제작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위한 탄탄한 스토리전개로 완성도 높은 사극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극은 시청률에 따라 편수가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또한 사극드라마가 종영하게되면 앞다퉈 새로운 사극이 제대로 된 고증도 거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사극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있어 사극이란?

사극은 우리에게 단순한 역사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재밌고 접근하기 쉬운 역사교과서가 되어주고 과거를 돌아보게 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게 한다. 또한 최근 일고 있는 한류의 열풍으로 사극이 수출됨으로써 외국인들에게는 자랑스런 우리의 얼을 보여줄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인 고증이 오점 투성이인 우리 사극. 과연 우리가 사극을 통한 객관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 할 것인가? 또한 원래의 우리의 모습이 아닌 지어낸 모습을 세계인에게 선보여도 되는 것일까? 더 이상 사극은 우리나라 안에서 만의 무협지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인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얼이 담긴 작품이어야 하며 또한 우리에게는 질 좋고 재밌는 역사교과서로써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