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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미스핏츠'의 책임 : <한국일보 vs 프레시안>에 부쳐

최근 20대 미디어 [미스핏츠]의 한 동영상이 회자되고 있다. 라는 영상이다. 34초의 짧은 영상의 내용은 단순하다. 한국일보와 프레시안의 모바일 화면을 틀어놓고 기사를 읽는 것. 그 과정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광고의 개수를 비교한다. 영상 중간중간에 (깊은 한숨)이라거나 (이젠 기사가 보이지도 않아)라는 내용이 프레시안 쪽에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광고 숫자 비교해준 뒤 ‘프레시안 최소 광고왕 200% 인정!’이라며 끝이 난다. 이 영상을 두고 [미디어오늘]에서 기사가 나왔고, 많은 미디어 종사자들로부터 비판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체제이고 조합원으로 가입해 돈을 지불하면 광고가 뜨지 않는다는 점, 한국일보는 광고가 없는 ‘클린 닷컴’을 만들 재정적 기반이 있었다는 점 등 언론사들의 사정..

[뭍위에서] ⑨ "섣부른 위로가 더 큰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전○○씨*는 ##화재에서 고객 상담과 문의 업무를 맡고 있는 2년차 직장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여러 명의 새엄마, 기댈 곳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끈이었던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을 경험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어중간한 위로가 주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제 3자가 건네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상처와 원망하는 마음을 줄 뿐이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서 제 3자인 자신의 추모와 위로가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두려워했다. 그 날은 평소와 같았다. 아침부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로 부랴부랴 출근하느라 바빴다. 지하철에서 한 숨 돌리며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을. 그 때까지만 해도 전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쁘게 이런 저런 상담과 민원 업무에..

[뭍위에서] ⑧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장OO* 씨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24살의 2년 차 간호사이다. 작년에는 1년 차 직장인으로 빡빡한 근무 일정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퇴근, 잠, 출근이라는 반복되고 고된 일정으로 그 소식을 환자를 통해 늦게 접하였다. 그녀는 바쁜 직장 생활과 더불어 사회 문제에 다소 관심이 적은 탓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보를 간간히 SNS로만 접한다고 한다. 2014년 4월 16일에는 이브닝이라고 낮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는 일정이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는데 환자들이 튼 TV를 통해 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저녁쯤에 일을 하다가 전해 들었는데 배가 침몰했고 몇백 명이 그 안에 있다고 해서 엄청 놀랐다. 일하러 가기 전에는 자느라 첫..

[뭍위에서] ⑦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김00* 씨는 24살 대학 졸업생이다. 현재는 토익 공부를 하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사건 이후 한 달 동안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한 달 이후엔 죄책감을 가까스로 덮어놓았다. 그러나 죄책감이 종종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날 학교를 갔다. 학교를 가기 전에 뉴스를 봤었는데 가는 중에 뉴스를 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그때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봤었다.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이렇게 넘어갔는데.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뉴스를 봤다. '전원 구조 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

[뭍위에서] ⑥ "역설적이게도 자의식이 생겨났다"

손00 씨*는 세월호 사건 이후 강박처럼 더 큰 재난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전이었다면 잊고 넘어갔을 친구의 가벼운 사고소식에서도 공포를 느끼고, 혼자 있을 때면 가족이 떠나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고 되뇌었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체계가 붕괴되면서 완벽에 대한 불신도 생기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집단 체험은 그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약간씩 바꾸게 만들었다. 이전에 주변 선배들에게 이야기 들었던 용산 참사, 광우병 파동에 대해서 입장을 내리는 것이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로 생각을 밝히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고백했다.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다가 네이버에서 들어갔는데 속보로 해상사고가 났고, 다 구조되었다고 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점심..

뮤지컬 ‘로기수’, 그에게 간절함이란

장소불문하고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뮤지컬 프레스콜’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취향저격 당한 뮤지컬을 발견하면 같은 장면을 다른 매체 동영상들을 찾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조건반사가 됐다. 무대 위 모든 것에 대한 설렘이 마음 속을 가득 채운다. 전문가처럼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진 않다. 하지만 배우, 음악을 사랑한다고 단언할 순 있다. 자, 뮤덕입문자의 ‘덕질’을 시작하련다. ※[뮤덕일기]의 모든 작품은 필자의 순수한 ‘덕후’ 마음으로 다녀왔다. 지극히 필자의 취향인 작품들만 다룬다. 세로로 높은 무대를 따라 시선은 위로 옮겨진다. 무대 중앙을 향하는 한줄기 빛, 그 끝에 구두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돌리며 무대를 살피다 보니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이곳은..

[뭍위에서] 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배00 씨*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는, 스물 셋의 그는 경기도 안양에 산다. 세월호 사건 당시엔 비슷한 지역 사람들과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 사람도 있었다. 한 다리 건너 전해 듣는 단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완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험이 며칠 안 남은 날이었거나 시험기간이거나 그랬다. 공부하다가 배고파서 친구들한테 떡볶이 먹으러 나가자고 그랬다. 그런데 애들이 안 먹겠대서 나혼자 떡볶이집에 갔다. 종류별로 먹고 싶어서 여러개 시켜놓고 되게 천천히 먹고 있었다. 학교 앞에 허름한 떡볶이집이었고 주인 아주머니랑 나밖에 없었다. 엄청 조..

[뭍위에서] ④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OO 씨*는 금융, 재무 관련 자격증 준비와 경제학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다중 전공이 중국 경제 통상학이라 HSK(중국어능력시험)까지 딸 예정이다. 지금은 하고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대학생인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엔 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전환 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구급차까지 팽목항으로 지원을 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년 4월 16일에는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급활동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자 마자로 기억합니다. 주간 근무에는 근무에 여유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는 경우가 드문데,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해상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커서 계속 텔레비전을 켜두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

[뭍위에서] ③ "지금도 세월호 당시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박○○ 씨*는 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사범대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다.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않으며 방어적인 성격이다. ‘어렵고 괴로운 것은 피해가자’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 그에게도 세월호 사건은 피해갈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는 때때로 세월호 사건을 예고 없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당시 교생실습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침은 늘 출근 준비로 바빴다.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포털 기사로 확인했다. 하지만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아침 시간 기사들은 오보도 있었고 정확한 정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원 구조’라는 말 때문에 일종의 해프닝인 줄 알았다. 하지만 퇴근 후에는 사건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확실한 정황을 알게 된 것도 퇴근 후였다. 재난 보도를 챙겨보지는 않는다.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