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 모양(22)은 얼마 전 수강신청을 처음으로 실패하였다. 남들이 엄청난 경쟁 속에서 수강신청을 할 동안, 김 모양의 과는 인원이 적은 편이라 비교적 여유 있게 해도 항상 성공이었다. 그러나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하기 시작하면서 차질이 생겼다. 경제학과의 전공기초 과목들은 애초에 모두 ‘원전공생 우선 수강신청’이라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원전공생 우선 수강신청’이란 수강신청을 할 때 원전공 학생들에게 강의 신청의 우선권을 주기 위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일정기간동안 수강신청에 제한을 두는 것을 말한다. 김 모양은 할 수 없이 경제학과 수업들의 경우엔 경제학과 전공생들이 수강신청을 다 한 다음 남은 강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빌 거라고 예상했던 강의에 맞춰 원전공 시간표를 미리 짜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제한이 풀린 수강신청 당일 날 보니 예상했던 수업이 이미 꽉 차는 바람에, 다른 빈 강의와 시간표를 맞추다 원전공 시간표까지 대폭 변경해야만 했다.




너도나도 상경계열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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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경영학과와 상경계열 학과의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과들은 이미 다른 학과들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전공이나, 부전공 학생들까지 추가되니 인원이 초과될 수밖에 없다. 복수전공생과 부전공생들의 수가 너무 많게 되자, 되려 원전공생들이 자신의 학과 수업을 들을 수 없는 불상사가 발생하였고, 원전공생들에게 먼저 수강의 기회를 주어야 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 ‘원전공생 우선 수강신청 제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복수전공, 부전공의 상경계열 쏠림 현상은 김 모양이 다니고 있는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8월 24일 연합뉴스의 한 기사에 따르면 올해 단국대 1학기 죽전캠퍼스의 복수전공 신청자 절반가량인 47%가 상경계열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하였다. 아주대의 경우도 1학기 복수전공 신청자 1천287명 중 484명이 경영학을, 115명이 국제통상학을, 92명이 경제학을 신청함으로써 절반가량이 상경계열에 몰렸다.




상경계열 인원수만 늘려주는 자유전공학부?

이미지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1/2011062100020.html

 이와 같은 상경계열 쏠림 현상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전공 선택 비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탐색한 뒤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신설된 자유전공학부가 그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경영, 상경계열 학과로 전공 신청이 몰리고 있다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자유전공학부를 두고 있는 대다수의 대학들이 이와 같은 문제점을 겪고 있다. 많은 경우에서 자유전공학부 학생 중 80% 이상이 경영, 상경계열 학과를 전공으로 신청한다. 6월 21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공 선택을 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315명 중 경제·경영이 145명으로 그 비율이 46%에 달했다. 지난해 1학기부터 올해 1학기까지 3학기 동안 총 315명(복수전공 포함)이 전공을 배정하면서 81명이 경제학과를, 64명이 경영학과를 신청한 것이다.
 중앙대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자유전공학부를 공공인재학부로 개편함으로써 신설 한 학기 만에 자유전공학부를 사실상 폐지하기도 하였다. 중앙대는 자유전공학부생의 70% 이상이 상경계열을 지망하는 현상을 보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자유전공학부를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으나 점수가 모자란 학생들이 뒷문으로 들어오는 통로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개편을 시행하였다고 하였다.



상경계열 선호하는 사회

 왜 이렇게 상경계열의 학과들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대학교 졸업생들의 대다수가 취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면 누구나 그 답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극심한 실업난 속에서 기업체들은 상경계열의 전공자들을 선호하고 있다. 상경계열의 학과는 그 특성상 돈을 벌기에 유리하고, 다른 분야와의 연계성도 높아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학과이다. 돈이 최고시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학문, 최고의 학과는 돈을 잘 벌게 해주는 것이다. 상경계열의 학과들은 이러한 요건을 가장 잘 충족시킨다. 아무래도 상경계열을 전공한 사람들이 기업체 업무에 대한 이해 속도가 더 빠른 편이기 때문에 기업체들의 선호도가 높아 취직의 기회가 더 많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철학과와 같은 기초 인문학을 소신 있게 지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지원하기로 마음먹는다 하더라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그 의지가 쉽게 꺾이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굳이 이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학생들 또한 대접받는 학문을 하고 싶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학입시에서, 그 인기 덕에 상경계열의 학과들은 대다수의 학교에서 가장 높은 점수대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점수가 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과에 지원하여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보다 상경계열 학생들이 더 엘리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대우도 천차만별이다. 어느 대학에서나 경영학과와 상경계열 학과들은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서러운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인문학은 취직이 안 된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자신 있게 자기 전공을 밝히기 싫어지는 경우까지 생긴다. 문과대의 전과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취업을 위한 장이 되어버린 대학

 정말로 상경계열 학문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길 원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상경계열이 현실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자신의 진로와 연관시켜 공부하길 원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실태는 상경계열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러한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나쳐 보인다. 아무리 돈이 가장 중요시되는 사회이고, 대학이 학문의 장이 아닌 취업을 위한 장이 되어버린 현실이라지만, 단지 취업만을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대학이 학문의 장의 기능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기초인문학은 찬밥신세이고, 실용학문들이 대세가 되고 있는 주객전도 현상이 우린 이미 너무나도 익숙하다.



 지금과 같은 사태는 어느 한 개인이나 기업체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대학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뿐 더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조차 의심스러울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현 사회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많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경계열의 인기 뒤에 가려진 기초인문학의 비참한 처지는 우리 사회가 점점 ‘인간’ 중심이 아닌 ‘자본’ 중심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소외된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학문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는 일이 쉽게 실현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조성하려는 노력이라도 사회 곳곳에서 활성화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