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소년>을 읽은 사람이라면 십 중 팔구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을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고 여길 것이다. 그것뿐일까? 동화의 교훈 속에는 중요한 진실이 감춰져 있다. 동화는 양치기를 어리석다고, 나쁘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진짜나쁜 건 양을 잡아먹는 늑대다. 늑대는 탐욕스럽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양은 한 마리 내지 두 마리지만 소년의 양을 모두 차지해버린다.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늑대가 소년보다 더 나쁘다는 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동화의 구성이 양치기소년의 거짓말 속에 늑대의 탐욕을 숨겼기 때문이다.

검찰은 곽 교육감에게 출국금지 조취를 내려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기여했다



탐욕은 어제 오늘 일만이 아냐 

늑대의 탐욕은 어제 오늘 일만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3000억을 받았다는 사실은 탐욕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말해준다. 천문학적인 돈과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세상에 알려진 것을 고려한다면, 그 사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공정택 전 교육감이 비리에 연루 되고도 최종판결을 받을 때까지 사퇴하지 않고 버틴 것은 아주 작은 일로 보일 정도다. 검찰 또한 떡검’, ‘섹검이란 별명을 아직 떼지 못하고 있다. ‘차떼기부터 대표되는 한나라당의 비리를 언급하는 건 이제 고루한 일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서울 교육감 후보 통합 과정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후보에게 2억을 건넸다는 사실에 비분강개하며 성토하고 있다. 그들은 곽 교육감을 위선자라고 부르며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은 정보원의 실명을 밝히지 않으면서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수사내용을 드러낸다.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를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 126조를 피할 수 있다. 언론은 사실에 대한 확신도, 확인도 없이 검찰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 거기엔 우리가 늑대가 소년보다 나쁘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그놈이 그놈이다라 하며 냉소주의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우리가 도덕적 우월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의문을 가져야만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만평 11.8.30


  
진보 교육감도 보수 교육감과 다를 게 없잖아? 

앨버트 허시먼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권력과 지위, 그리고 부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수사학이 예전부터 있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허시먼은 보수주의자들의 과거부터 역효과명제’, ‘무용명제’, ‘위험명제를 사용해왔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을 하면 경제가 어려워 질 수 있다.(위험명제) 무상급식을 해도 복지제도는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무용명제) 이런 식이다. 과거 영국에서는 극단적으로 산업재해보험이 생기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손발을 자를 것(역효과명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곽노현 교육감의 비리 의혹은 대중들에게 
무용명제로 설파된다. ‘진보 교육감도 보수 교육감과 다를 게 없잖아’, ‘바꿔서 진통을 겪는 것 보다는 그냥 두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건 대중들의 냉소주의다. 물론 직접 얘기하진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이 언론과 여론을 접하기 쉬워지면서 애꿎은 수고를 덜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특히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메커니즘은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선 법적 불이익을 피하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 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반공이데올로기의 고급스러운 대안 역할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노무현정부 때에도 이 같은 메커니즘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 정부의 정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보도하면 그에 따른 여론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얻어낸 것은 정권교체라는 결과물이었다. 현 정권을 불신하는 태도가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서울시 주민투표에서 계속해서 드러난 지금, 위기감에 휩싸인 보수주의자들은 노무현정부 때처럼 곽 교육감의 비리의혹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주의가 생긴다면 자신들의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바뀐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냉소하라. 분명한 건 양치기는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거짓말을 잘하는 양치기가 있다면 정직한 양치기도 있다. 지금 양치기가 거짓말을 한다면 정직한 양치기를 뽑으면 될 일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비리가 사실로 밝혀지면 다른 진보 교육감을 선택하면 된다. 아이들의 밥그릇을 뺐지 않는데 동의했다면 말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양을 다시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역사는 반복될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했는가? ‘이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열광한다는 광고 문구처럼 역사는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