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매 맞는 대기업

지난 8월 17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당초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일본 출장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허회장은 일본에서의 일정을 미루고 급히 귀국해 1시간이 지난 12시경 공청회에 참석했다. 일본에서 발 빼고 지켜보고 있기에는 사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허회장의 예감이 맞았던 걸까. 그날 공청회 분위기는 한마디로 ‘재벌 죽이기’였다. 재벌들의 사회적 책임 회피에 대한 비난과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국회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대기업에 불어온 사회적기업 바람

공청회의 한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듯, 지금 정치권은 여야할 것 없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실상 논의보다는 대기업에 대한 비난과 질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매 맞는 아이’가 된 대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대기업들이 말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노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및 조직이다. 그리고 영업활동을 통해 난 수익은 전통 기업처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재투자 된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일지도 모르지만 대기업에서는 이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사업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된 SK는 이전부터 꾸준히 사회적기업에 지원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현재 SK는 ‘행복도시락센터’, ‘메자닌아이팩’, ‘고마운손’ 등 76개의 사회적기업을 직접 설립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장애인 보조 및 재활기구 전문기업 ‘이지무브’와 쌀과자 생산기업 ‘H&S 두리반’을 설립했다. 포스코도 ‘포스위드’ ‘송도에스이’ ‘포스에코하우징’ ‘포스플레이트’ 등 4개의 사회적기업을 설립했다. 이외에도 삼성, 한화, 효성 등 여러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사회적기업 지원에 참여하고 있다.

이쯤되면 대기업에 사회적기업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할만하다. 대기업의 사회적기업 지원 바람은 대기업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자본, 기술력, 경영 노하우 등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일면 긍적적인면도 가지고 있다. 아직 한국 경제에서 사회적기업이 차지하는 측면이 아주 미미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대기업의 관심과 지원은 사회적기업이 주류로 가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대기업 중심의 사회적기업 생태계 형성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기업에겐 비교적 쉬운 사회적기업 인증 그리고 악용 우려

포스코에서 출자한 포스플레이트는 지난 5월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는 앞으로 4년간 법인세, 소득세 감면 혜택과 4대보험료 등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까지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기업 인증’이라는 타이틀은 사회적기업의 신청을 받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소수만 선정이 되고 있다.  선정 기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영업활동을 통한 수입총액이 제조활동과 관련된 인건비의 30%이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주도로 세워진 포스플레이트를 비롯한 사회적기업은 이 요건을 너무나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스코로부터 하청을 받기 때문이다. 포스코에서 사업을 진행한다면 정부지원은 커녕 엄청난 세금을 내야하지만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포스플레이트로 사업을 넘기는 순간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세금감면은 물론 정부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명목 하에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회적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되돌아볼때

출처 - 동아닷컴



또한 설령 포스코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포스플레이트를 설립했다하더라도 포스플레이트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기업이라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사회적기업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기업을 고용창출의 목적으로만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아니다. 이미 사회적기업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영국이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보면 사회적기업은 일자리창출 외에도 문화적 가치 창출, 지역 가치 창출 등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다양한 가치를 지닌 사회적기업이 모였을 때 비로소 협동과 연대를 지닌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포스플레이트를 비롯해 대기업 주도로 세워진 사회적기업은 오직 일자리를 창출에만 국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자리를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요구에 꺼내든 카드가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이다. 애초 태생부터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기업의 DNA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사회적기업은 대기업 밖에서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

사회적기업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하에서 사회적 책임활동의 도구정도로만, 일자리 창출 도구 정도로만 되길 원한다면 오히려 지금의 추세가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경제위기를 통해 이러한 경제구조가 얼마나 큰 위험성을 가지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회적기업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주도의 사회적기업 논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다시 재편할 뿐이다. 사회적기업이 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으로부터 벗어나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