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한 장 끊는다. 내려다 본 표의 목적지는 서울이라고 적혀있다. 현재 시간은 오후 5시, 시외버스터미널은 늘 그렇듯 붐비는 인파로 북적 북적 하다. 잠시 시멘트 기둥에 기대어 표를 만지작거린다. 멀리서 서울행 버스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이번에는 버스를 놓치지 않은 듯하다. “표 주세요!” 까무잡잡한 얼굴의 버스기사 아저씨가 두툼한 손을 내밀려 내게 말한다. 난 만지작거리던 표를 내밀어 버스기사에게 건낸다. 흘깃 쳐다본 버스기사 아저씨의 얼굴이 만족스러워 보인다. 가까운 빈자리의 좌석에 앉아 창가에 얼굴을 기대어 본다. 5시10분. 앉은 자리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진다. 곧이어 창밖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내 눈은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무심코 바라본 표지판에 새겨져 있는 어구 Happy Suwon. 그렇다 내가 지금 떠나고 있는 도시는 행복한 수원. 뭐가 행복하다는 거지? 갑자기 혼자 피식하고 웃어본다.



최근 몇 년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브랜드화하고 있다. 이른바 도시브랜드 라는 것인데, 도시의 경제적인 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상에 오른 상태에서 그 도시를 문화적으로 잘 꾸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색을 잘 살려 상품화를 거친 뒤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또는 꼭 가봐야 하는 장소로 만들어 내는 것이 도시브랜드화의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브랜드화 움직임에 앞서 각 지자체에서는 자신의 도시를 알릴 수 있는 슬로건들을 한 가지씩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Hi Seoul, Dynamic Busan, A+ Anyang, It’s Daejeon, Happy Suwon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슬로건은 영어로 되어있다. 이유인 즉, 세계화시대에 발맞춰 외국인에게 어필하기 쉽도록 하기 위함과 영어로 쓰고 각 단어마다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 폼나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It’s Daejeon의 경우 직역하자면 그것은 대전이다. 아마 대부분의 외국인 방문객 역시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설명에 의하면 I는 'Interesting –삶이 재미있고 풍요로운 도시', T는 'Tradition and Culture – 전통과 다양한 문화의 도시', S는 'Science and Technology – 과학의 도시, 미래의 도시'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It’s 라는 단어에 다양한 뜻이 말 그대로 숨겨져 있었다. 대전 이외에도 도시슬로건의 의미를 한 눈에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G&G PAJU. G&G가 과연 무엇일까? 영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조차 전혀 짐작 할 수 없는 나열이다. 이것 또한 지자체의 설명에 따르면 “변화와 경쟁”을 통해 시민이 살기좋은(Good) 도시, 품격이 높은(Great) 도시를 만들어 대한민국대표도시로 파주를 재창조하자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주의 경우 각 단어의 색깔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청색은 풍요와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적색은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에너지를 의미하며, 오랜지색은 지혜를 갖춘 화합된 시민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도시슬로건의 뜻은 각 지역에 거주 하는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데, 해당 지역 밖의 외부인이나 외국인이 이런 뜻을 찾아 알고 있어야 하는가? 또한 표면적으로 보이는 슬로건만으로는 전혀 도시의 특색을 알 수 없다. 과연 현재 이러한 도시슬로건의 쓰임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멋진 슬로건! 알기 쉬운 슬로건!

도시브랜드화가 일종의 붐이 일어, 각 도시 지자체마다 거금을 들여 슬로건을 만들고 그에 걸맞는 계획을 실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거금을 들여 만든 슬로건은 막상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며, 외국인을 겨냥해 만든 영어식 슬로건은 그 뜻이 애매해 그 도시의 특색 등이 잘 전달되기는커녕 외국인을 혼란스럽게 한다. 혹자는 이러한 심오한 뜻이 담긴 도시슬로건을 잘 홍보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거금을 들여 만든 슬로건에 또다시 그 뜻을 알아달라고 홍보하며 돈을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도시의 슬로건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영어로 되어있고 단어마다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전주의 경우가 있는데, 그곳에서 쓰이는 슬로건은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이다. “비빈다.”라는 표현만 봐도 전주의 명물인 비빔밥을 쉽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세계를 비빈다.”라는 표현에서 전주의 세계를 향한 포부가 느껴진다. 또한 디자인 역시 지극히 한국적이어서 전주라는 도시에서 왠지 모르게 한국적 미가 더욱 느껴진다.

이처럼 모두가 원하는 슬로건은 영어로 쓰고 그 단어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심지어 색깔에도 의미를 한껏 부여해 폼 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 할 수 있고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한글로 도시슬로건을 선정한 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