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카이스트 이공계인재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었던 일을 혹시 기억하는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교에 들어가 엘리트의 길을 걷던 그들이 목숨을 끊은 이유로 카이스트의 징벌적 수업료 제도와 함께 ‘100% 영어 강의’가 지목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00% 영어강의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이 쏟아졌고 더 나아가 일반 대학교의 영어강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교에서 글로벌화를 위해, 경쟁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점점 더 많은 영어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대학교의 영어강의,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출처 : 충북인뉴스,대학 영어강의, 목적은 ‘세계화’ 수준은 'ABC', 염귀홍 기자, 2011-04-27



  POSTEC과 KAIST 같은 국내 유수의 이공계 대학에서는 100% 영어 강의인 영어공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대학들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교에는 영어강의가 개설되어있다. 영어 강의 바람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해외의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영어강의가 필요했고, 대학의 글로벌화, 세계적 대학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상징이 바로 영어강의였다. 연세대의 경우 2011년 1학기 기준 전체강의의 29%가량이 영어강의였고, 서강대는 2010년 기준 25.6%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직 일반 대학 중에서 대학에서의 ‘영어공용화’가 실시된 대학은 없지만, 대학들은 영어 강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추세다. 연세대학교 교무처 측은 1~2년 내에 영어강의의 비율을 35%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고, 영어강의를 권장하기 위해 매년 영어강의 비중이 높은 5개 학과를 선정해 시상하고, 영어강의 우수교원 시상도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장사항”이라고 하지만, 영어강의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출처 : 파이낸셜 뉴스, 영어 외치는 대학가..강의의 質은?, 2009-05-27


  학교 측에서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영어강의를 확충한 결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 강의를 하는 교수도 있다. 서울 소재 A학교 09학번인 안모 학생의 말에 따르면 어떤 교수는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 강의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본인 스스로도 영어 강의를 할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준비”라는 것은 영어 강의를 기존에 하던 한국어 강의와 동일한 수준으로 강의할 만큼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기존의 수업계획서대로 영어 강의를 이어나갈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강의 수는 많지만, 이에 비해 준비된 교수는 많지 않다. 


  계획서와는 달리 말로만 영어 강의인 수업들도 문제다. 수업계획서에는 영어 강의라고 명시되어 있던 수업은 학생들의 동의하에 한국어 강의로 진행되기도 한다. 서울 소재 B학교 11학번 심모 학생은 원래 영어 강의로 진행한다고 명시된 체육교양수업이었지만, 교수가 서로 편한 한국어로 진행하자며 한 학기 내내 한국어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영어로 강의를 하겠다는 강의 계획서와 다르게 강의를 하는 교수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불만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는 학생들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교수들이 영어강의를 한국어로 강의를 했을 때 아무런 제지가 없다면, 다음에도 계속될 것이다.

  영어 강의의 취지를 잊고 영어 강의의 절대평가 제도를 악용하는 학생들도 문제다. 영어강의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절대평가로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학점을 잘 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영어 강의는 조금만 노력해도 학점을 받기 쉬운 과목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수업에 참여한 결과, 교수는 제대로 된 영어 강의를 하지만 영어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준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외국인 교수가 영어 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용어들을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더 나은 영어 강의를 위해서는

  

학교는 왜 영어강의를 개설하는가? 학교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물론 학생들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학교는 “영어 강의의 수”를 확충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먼저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고 따라올 만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현재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강의를 따라가는데 무리가 있다면, 영어 강의를 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단계별 영어수업을 하는 등, 체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 측은 영어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한 학생은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하되, 교재는 원서로 하는 수업은 이해는 쉽고 동시에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영어강의확충을 위해 단계적으로 설명은 한국어로, 교재는 원서로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일방적으로 영어강의를 개설하기보다는 학교의 구성원들인 학생, 교수진, 학교 당국 모두가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영어강의를 얼마나 개설해야하며, 꼭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모색이 모든 논의에 기본이 되어야할 것이다. 영어강의를 통해 학생들의 영어를 듣는 귀를 뚫어주려하기 전에 학교가 학생들을 목소리를 더 들어보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