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의 전국적 정전사태는 그간 틈틈이 새어나오던 전기 소비 조절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더 이상은 묵과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기 요금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싸다. 때문에 한전은 지난 3년간 적자였다. 정부는 민생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공과금을 ‘물가 잡는다.’는 명목으로 현상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세 인상은 한전의 재정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잘못 버릇 든 국가 에너지 소비 형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혁신되면서 안락한 환경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질이 냉·난방의 전면적 보급을 이끌어냈다. 이제 나라 그 어느 곳에서도 여름철에 냉방을 하지 않는 곳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에어컨을 가지고 있는 집은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그 마저도 용량이 적은 벽걸이형이 많았다.(*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 추이 :  (’00) 3,975천대 (0.29대/가구) → (’04) 6,615천대 (0.42대/가구) → (’09) 9.940천대 (0.60대/가구) - 출처 기후에너지신문) 학교는 많아야 4개인 선풍기로 여름을 보냈다. 과거에는 웬만한 더위에는 참을성 있게 견디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금만 더워도 참지 못하고 에어컨 바람에 의존하고 마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출처 : 뉴시스

무엇보다 학교나 버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냉방 실태가 가장 문제다.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냉방을 세게 해도 내 돈 나갈 일은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실외온도가 20도 초반인 초가을 간절기 날씨에도 분별없이 에어컨을 가동한다. 한여름의 대학 기숙사에서는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 둔 채 잠을 자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담요나 이불을 꼭 덮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는 말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이 정도면 습관이 아니라 냉방중독이라 할 만하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25~26℃만 돼도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온인데도 말이다.

무절제한 냉방은 날씨를 무덥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화석연료 사용이 온실효과를 일으킨다.’는 흔한 상식 때문만이 아니다. 에어컨의 원리는 실내에 있는 열을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열은 이동할 수는 있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에어컨 때문에 실내는 시원해질지언정 바깥 기온은 안에서 빠져나온 열기에 에어컨이 가동되면서 발생하는 엔진열이 더해져 이중으로 뜨거워진다. 당연히 체감 온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커지는 것은 신체에도 매우 좋지 않다. 냉·난방 권고사항에서 실내외간 온도를 5도 이상 벌리지 말라고 하는 것도 급작스런 온도 변화로 몸이 쇼크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여름감기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지 생각해보라.


작금의 에너지 소비 행태는 분명히 왜곡되었다. 냉·난방의 보급이야 줄이겠다고 줄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소비량만큼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 정부가 현명하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공공서비스 요금보다는 잘못된 재화유통구조이다. 의류와 식료품 등에서 원가 대비 판매가가 터무니 없이 뻥튀기 되어 있다. 공공서비스 요금은 정부가 제어할 수 있지만 수없이 많은 민간의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재화유통구조를 손보기란 아무리 능력있는 정부라 해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라고 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을 하려는 노력이 아닌, 단순히 공과금을 올리지 않는 것으로 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은 너무도 안일하다. 안일한 태도는 반드시 대가를 부른다. 또 혹여 정부가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이유가 분명한 일을 미루고 있다면 그것 역시 소인배적(小人輩) 사고라 할 수 있겠다. 국민이 종국에 원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닌, 옳은 결정을 하는 정부라는 것을, 당국자들이 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