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사회면에는 매일 사건,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나라가 살인, 강간, 강도, 뺑소니 등 강력 범죄들로 얼룩져 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사건들은 엄청난 사회적 이슈를 몰고 오기도 한다.

최근 대중교통 수단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큰 이슈가 되었다. ‘외국인 버스 난동’과 ‘지하철 20대 막말남’이 쌍두마차다. 흑인이 버스에서 노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인종주의(racism)적인 다문화 포비아를 우리 사회에 심어 놓았다. 20대 막말남으로 인해 20대는 또 다시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세대 담론의 도마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뉴스에서 연일 대서특필된 위의 사건들은 정말 그렇게, 온 나라가 들썩거려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을까? 상업주의적인 미디어의 덫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걸려든 건 아니었을까? 뉴스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생산과정에 눈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외국인 범죄가 한국인 범죄보다 흥미롭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1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5대 강력범죄 건수는 40만 7천 건에 이른다.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매일 무려 1116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많은 사건들을 미디어가 모두 주목하지는 않는다. 지면의 한계를 비롯한 제약 덕에 미디어는 나름의 기준에 따라 사건들의 뉴스 가치를 판별하여 어떤 것은 기사화하고 어떤 것은 버린다.

문제는 최근 온라인 위주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 상, ‘클릭수’ 유도를 위해 미디어가 스스로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며 선정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성이나 영향성 같은 전통적인 뉴스 가치의 원칙보다 ‘뉴스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여부로 뉴스 가치를 결정하고 있다. 대중교통에서 막말을 하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유형을 따져보자면 사실상 외국인보다는 국내인, 20대보다는 노년층이나 유아가 더 많다. 그런데 미디어는 외국인, 20대 문제를 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다룬다. 같은 범죄를 일으켜도 한국인 범죄보다 외국인 범죄가, 또 20대 범죄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 외국인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문화 차이로 인해 외국인 범죄가 한국인 범죄보다 많고 심각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와 경찰청 범죄통계자료를 종합해보면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 범죄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0년 발생한 외국인 범죄건수는 2만 2543건으로, 외국인의 범죄율은 1.79%에 그쳤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 126만 1415명이다.) 반면 2010년 우리나라에서는 내국인 범죄를 포함해 총 178만여 건의 범죄가 발생해 3.65%의 범죄율을 기록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hosabi55/110098001142



당신은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다

실제로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 범죄율에 비해 오히려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국인에 대해 (특히 유색 인종에 대해) 쉽게 지워지지 않는 편견을 가지고 산다. 이렇게 형성된 다문화 포비아로 인해,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정리해서 다문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합리적이지 않은’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 때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들을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연구에서는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단어로 정리하여 설명한다. 휴리스틱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의사결정과 판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인지적인 경험법칙으로,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 대신 휴리스틱에 따라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사람들의 휴리스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미디어다. 가장 보편적 휴리스틱 중 하나인 가용성 휴리스틱(the availability heuristic)은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어떤 사건의 발생빈도를 그 사건의 구체적 사례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를 토대로 판단하는 방식의 사고다. 뉴스는 최신의 정보를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때문에 뉴스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는 사람들이 떠올리기에 매우 유용해진다. 미디어가 외국인 범죄를 지속적으로 집중 조명할수록, 우리는 외국인 범죄율이 낮다는 객관적 사실 대신 최근 발생한 외국인 범죄의 ‘충격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의 ‘무서운’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어떤 이슈를 다루면, 사회는,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슈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릴 개연성이 크다. 이 사실은 미디어가 상업적이기보다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만큼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토대 하에서, 미디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우리가 범하는 휴리스틱 오류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성’이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