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어느 시인이 서울대에 대해 쓴 시 중 일부다. 소년은 이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이 문장이 담고 있는 엘리트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해 배울 나이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 문장은 소년에게 아무런 경계 없이 다가왔다. 그에게 서울대는 일종의 꿈이었다. 끝내 성적이 미치지 못해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입학하지 못했기에 서울대는 소년에게 하나의 로망으로 남았다. 입구에서 찬란히 빛나는 ‘샤’의 위엄은 소년을 주눅들게 했고, 서울대가 먼저 실시하면 표준이 되어버리는 입시정책은 ‘조국의 미래’라는 문구를 증명해주는 듯 했다.

2.
소년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본 대학은 ‘진리’의 향연이었다. 그것은 대학들의 교훈에서 드러났다. ‘진리는 나의 빛’(서울대), ‘자유, 정의, 진리’(고려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연세대), ‘진리에 순종하라’(서강대) 등의 교훈이다. 실상이 어떻든, 대학이 지향하는 지점이 ‘진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소년은 그에 대한 모순을 느꼈다. 그와 함께, 또 하나 소년이 느낀 것이 있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 ‘학교의 주인은 학생’임을 배우며 컸던 소년에게 이는 충격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주인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었고, 소년은 멀찍이서 방관했다.


3.
소년은 커갔다. 그를 둘러싼 환경도 변해갔다. 대통령이 변했고, 대학이 변했다. 비단 소년의 학교만은 아니었다. 대학들은 앞을 다투어, ‘경쟁력 강화’를 외쳤고, 그 외침은 정작 학생을 소외시켰다. 소년은 다시금 모순을 느꼈다. 대학 공동체의 최고 다수인 학생이 학교의 변화에 참여할 수 없다니, 이것이 ‘진리’를 외치던 대학의 모습인가. 물론 그런 대학에 맞서, 학교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지없이 ‘징계’의 철퇴를 맞는다. 중앙대의 예가 그러하다. 중앙대가 두산에 인수된 뒤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학과 구조조정 등을 행했었다. 이에 반대하여 고공 시위를 했던 학생들이 무기정학 등 징계를 받았던 것이다. 징계에 대해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중앙대는 징계를 철회하지 않았다.

4.
그 것이 2011년 3월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소년은 한 때 꿈꿨었던 서울대의 소식을 듣는다. 그곳에서는 학교의 ‘변화’에서 배제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에 학생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대 본부를 기습 점거했던 학생들은 즐거이 반대집회를 이어나갔다. 본부 스탁이라는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고, 점거한 본부 내에 독서실을 임시로 만들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학생들의 모습에, 교수들 역시 지지를 보냈고, ‘역시 서울대’라며 언론들마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년은 그런 서울대의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소싯적 자주 들었던 말을 변용해, “누가 진보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 땐, 그랬었다.

5.
그러나 그것도 허상이었다. 모든 이슈가 그러하듯, 법인화 문제도 잠잠해졌다. 학교 당국은 대화를 약속했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 9월 초, 소년은 난데없는 소식을 듣는다. 법인화 반대 시위 주도 학생들에 대해 서울대가 징계 조치를 행했다는 것. 애초에 학생들이 본부 점거를 해제할 때 학교 측은 대화를 약속했었다. 대화의 결과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 먼저 하겠다니, 일의 선후가 바뀐 조치였다. 게다가 서울대의 본부 점거는 총학생회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른 학생사회의 선택이었다. 2400여명이 모여 성사된 비상총회, 그리고 점거에 참여한 수백명의 학생들, 또 직간접적으로 그들을 도운 교수들과 교직원, 동문들…그들의 목소리가 결국 세 명의 징계로 귀결되었다. 이것이 서울대가 말하는 ‘진리’인지, 소년은 생각했다.


6.
대학 마음대로다. 무분별한 학생 징계로 물의를 빚은 대학은 늘어만 간다. 비리재단 복귀에 반대하는 학생을 징계했던 덕성여대, 총장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명목으로 징계를 검토하고 있는 한국외대 등… 묘하게도, 서두에서 언급한 대학의 교훈들을 조금만 바꾸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다. “징계에 순종하라.”, “징계가 너희(대학)를 자유케 하리라.”

대학 입장에선, 그야말로 자유다. 징계가 그들을 자유케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징계를 하면 된다. 일벌백계의 효과도 있을뿐더러, 학내 언론만 통제하면 여론 역시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징계를 철퇴처럼 휘두르는 대학 앞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을 할 수 있는 통로는 막아놓은 채, 말을 하면 징계를 해버리는 이 대학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7.
소년을 한 때 주눅들게 했던 ‘샤’자 위에서 법인화 학생 징계에 대한 반대 고공 농성이 있었다. 그 학생은 시위를 하다 쓰러졌지만 서울대는 묵묵부답이었다. 28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동맹휴업을 실시할 예정이고, 29일에는 ‘전국학생총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 몇 명이나 징계할 셈인가.

소년은 더 이상 서울대를 동경하지 않는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말에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다. 소년은 생각한다. 지금의 서울대 본부는 조국의 미래가 아닌, 대학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일방적인 징계는 거둬져야 한다고. 학생들을 징계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징계를 일삼는 대학을 징계해야 한다고.

“누가 대학의 만행을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