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서점에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고문이 찾아온 적이 있다. 심 고문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군주론>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배신도 해야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부분이다. 진보적 정치인인 심 고문이 <군주론>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에 치러진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 겨우 지났을 때였다.

당시에도 지금도 심상정 전 고문과 진보신당에 희망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심 고문은 6.2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심 고문이 경기도지사 후보에서 사퇴해서 비난을 받았다. 노회찬 전 고문은 서울시장 선거를 끝까지 완주해 곤욕을 치러야했다.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진보라는 이름을 등에 지고 골고다언덕을 넘자 그걸 넘겨받은 건 갑자기 등장한 시민사회후보들이었다. 그런 마당에 진보대통합까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심상정, 노회찬 고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 당원들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을 부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달 23일 심 고문과 노 고문 진보신당을 탈당한 건 과히 결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민노당에서 탈당해 진보신당 창당을 이끌었던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민노당과의 분열을 주도 했던 이들이 다시 통합을 원한다? 이런 역설적인 사실로 인해 그들은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심 고문, 노 고문이 그 처지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탈당을 선택했을까? 심 고문이 찾았던 <군주론>에서 해답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따르지 않고 마땅히 해야하는 바를 고집하는 통치자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어떻게 사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분명히 다르다. 전자와 후자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히 정치인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꿈에 불과하다. 진보신당 창당과 진보의 영향력 확대는 단지 꿈이었다고 얘기하는 현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 총선에서 비례대표는 한 석도 얻지 못했고, 당의 간판인 심상정과 노회찬 마저도 당선되지 못했다. 1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다 3%를 겨우 넘는 지지율을 얻은 지방선거는 현실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반대로 현실에 가까운 선택을 했던 민노당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 갔다. 총선에서는 지역구 2석 전국구 3석을 획득했다.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과의 적극적인 연대로 광역의원 24명, 기초의원 115명 등 총 142명이 당선됐다. 그중에는 기초단체장도 있었다. 반면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22명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내놓았다. 조승수 의원도 보궐선거에서 민노당과의 후보 통합이 가져온 결과물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진보통합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는 얘기다. NL과 PD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건 소모적인 논쟁이 일뿐이다. 더군다나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이념에 따른 편가르기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정치인을 지지하는 건 자신들의 삶과 현실의 문제에 가까울 때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다. 어떻게 권력을 얻고 이용하느냐가 정치의 현실이다.

심상정, 노회찬 전 고문은 이를 깨달았고 재빠르게 행동에 옮겼다. 자신들에게 닥쳐올 거대한 파고를 감내하면서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어찌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군주론>은 절대왕정을 옹호하고 존립기반을 마련한 책으로 유명하다'를 '<군주론>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배신도 해야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고' 얘기했다'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