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이동관 언론 특보가 실수를 하셨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동관 특보는 두 문자 사이에 주어 ‘제가’가 생략된 것이라는 변명을 했습니다. 하긴 한국어에는 문장 성분이 자주 생략되곤 합니다. 때문에 문맥이나 말이 뱉어진 상황으로 문장 성분을 파악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그것이 말이 아니라 글일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말은 표정이나 몸짓 등의 비언어적 표현을 보고 뜻을 파악할 수 있지만 글은 오로지 문맥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이건 이동관 특보가 더 잘 알고 있을 사실입니다. 이동관 특보는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까지 지내시고, 대통령의 대변인도 역임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께서 ‘주어’를 생략했다니요. 기자가 되어 가장 먼저 쓰게 되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하원칙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대변인이 되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입니까. 단어 하나하나가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도 아니고 이 두 직업을 모두 거치신 이동관 특보가 주어를 생략한 채 문자를 보내셨다니요. 이동관 씨 말마따나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사실 이동관 특보와 박지원 의원이 친한 선후배 사이라니, 있을 수 있는 문자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동관 특보는 공인(公人)입니다. 그것도 행정부의 중심에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입니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입니다. 때문에 이동관 특보는 더욱 신중하셨어야 합니다. 공인 대 공인의 입장으로 볼 때는 당연히 곱게 보이지는 않을 문자 내용이었습니다. 박지원 의원이 국정감사 도중 저축은행 로비 사건과 관계해 이동관 특보를 언급한 현 상황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파장이 커지자 이동관 특보는 4일 이 문자에 대해 사과도 하셨습니다. 그 사과도 유감입니다.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 대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흠잡을 때 없는 사과 문자였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이동관 특보가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은 박지원 의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국회로 보내 준 국민에게 먼저 사과를 하셨어야 합니다. 이미 이번 사건이 ‘선배에 대한 후배의 버릇 없음’ 차원이 아닌, ‘청와대의 국회 경시’로 번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특보는 사과 뒤, “이건 공개 안 하실 거죠? ㅎ”라는 애교 섞인 문자도 보내셨습니다. 아직 본인의 문자가 불러온 파장을 제대로 인식하시지 못한 모습입니다.

게다가 공개하지 말라던 그 문자마저 공개가 되었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가지고 노는 문자’ 라며 분노했고, 민주당은 논평을 내, 이동관 특보의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이동관 특보는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적인’ 섭섭함을 ‘인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문자라고 주장하고 싶으시겠죠. 설마 정말로 국회를 경시하셨겠습니까. 알만한 분께서.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억울함을 표하는 순간 이동관 특보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자질’ 문제입니다. 기자를 거쳐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내고 있다는 사람이 고작 ‘주어 생략’ 문제로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대통령 대변인을 거쳐 언론 특보를 지내고 있다는 사람이 공과 사도 구별 못한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이 특보에게 현 상황은 딜레마입니다. 국회를 우습게 본 건 아니라고 변명하자니 문장 구조도 못 맞추는 ‘무능한’ 언론특보가 될 판이고, 박 의원에게 보낸 문자가 맞다고 인정하자니 ‘국회를 경시하는’ 언론특보가 될 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작 ‘문자’ 사건 때문에 묻혀버린, 이 문자의 원인이 된 ‘저축은행 로비 사건’ 역시 수사 중입니다. 이래저래 이동관 특보에게는 수난의 계절입니다.

어쨌든 문자는 전송되었고, 변명도 잘 되지 않으셨고,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억울하신가요? 아, 저도 주어 빼먹었습니다. 이거 저한테 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