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새는 아라비아 사막에 산다는 상상속의 새에요. 600년을 살고 나서 사막 한 가운데에 향목을 쌓고 태양광선으로 불을 붙인데요. 그리고는 날개를 파닥여 불을 지핀 후 스스로 그 불 속에 몸을 던져 죽는데요. 하지만 그 재에서 다시 어린 불새로 태어난다니까, 너무 슬퍼 할 필요는 없어요.

- 아, 그래서 이렇게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인 거구나. 불새처럼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사랑!

-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열정적인 살아보단 희생이 전제되는 사랑일 지도 모르죠. 불새가 스스로를 태워 죽고 그 재에서 다시 어린 불새를 소생시키는 것처럼 사랑도 희생을 치러야 한다. 뭐 이런 뜻 아닐까요?



여기 두 남녀가 있다. 그들은 철 모르는 스무 살에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너무 어렸고 성급했다. 남자는 천방지축 공주인 여자를 버거워했고 여자는 남자의 가난함을 감당하지 못했다. 둘 다 이기적이었고 자신이 더 중요했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버렸고 남자는 수치스럽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남자는 이국땅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지만 여자는 집안이 몰락하면서 남의 집 일을 봐 주는 헬퍼가 되어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헬퍼와 고객으로 다시 만난 둘. 10년이라는 세월만큼이나 깊게 쌓인 애증으로 서로를 할퀴지만 남자는 더 이상 가난한 고학생이 아니었고 여자 또한 10년 전의 금지옥엽 철부지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깨닫는다. 과거의 잘못을. 서로 사랑했지만 자신을 굽히고 진심으로 상대를 품을 수 있는 성숙함이 없었다는 것을. 그 순간, 두 사람은 절감한다. 이제야 말로 서로를 향해 달려갈 때라고.

 

 




2004년 방송된 mbc 드라마 ‘불새’는 최고시청률이 30%를 넘고 주인공 중 한명이었던 에릭(서정민 역)의 다소 느끼한 대사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비록 작가는 기획의도를 “때”, 즉 긴 시간을 통과하며 겪은 인생의 경험과 상황들로 서로를 이해한 후 진정한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랑의 타이밍’이라고 밝혀두고 있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사랑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사랑은 조건 없이 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끝없는 이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년 전의 지은(이은주)은 불새 그림을 두고 '희생을 필요로 하는 사랑'이라 해석했던 세훈(이서진)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정열적인 빨간 불덩이의 모습 그대로 사랑한 것이다. 훗날 지은은 세훈과 함께 그림을 보며 말한다. "난 아직도 모르겠어요. 여기 그림에서 나타내고 싶었던 사랑은 희생이었을까, 열정이었을까?" 그러나 마지막으로 불새를 보던 지은은 거센 홍역을 치른 후 희생까지 떠 안을 수 있는 여자가 된 후였다. 열정으로 시작한 사랑이 희생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되는 것. 세훈과 지은의 불새를 보는 시선은 드디어 맞아 떨어진다.

사실 드라마 '불새'는 될성부른 떡잎이긴 했지만 중반부를 지나면서 극 전개가 힘을 잃고 사각 관계가 짜증스럽게 전개되어 방영 당시 많은 질타를 받은 만큼 명작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멜로를 배제하지 않는 한국드라마에서조차 이처럼 '끝없이 져 주는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작품은 흔하지 않다. 미흡했지만 불새는 줄기차게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은 헌신과 인내가 필요한, 어려워서 위대한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