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자 한국판 뉴스위크에 꽤 흥미로운 칼럼 하나가 실렸다. 불황기에 집권했지만 뛰어난 지도력을 펼치며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남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로널드 레이건을 정면교사(正面敎師)로 소개한 것이다. 칼럼을 쓴 기자인 Andrew Romano 는 두 사람을 ‘재건형 지도자’라 칭했다. 문제가 된 낡은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루즈벨트와 레이건이 개혁과 구조조정을 치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했다고만 할 수 없다. 본래 개혁이라는 것은 강력한 저항이 뒤따른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대통령은 어떻게 뜻하는 바를 밀어붙이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을까? 비결은 논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낡은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해야 하며 그것이 곧 자신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라는 기조를 내걸었다. 그렇게 자신들을 규정짓고 나면 자연히 반대파는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논쟁우위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두 전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통해 시사 받는 바는 한가지다. 코드(Code)를 점령하면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논쟁은 어떤 가치가 더 옳은가의 대립이다. 그럴 때, 오가는 주제 자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즉 코드를 점령하는 일이 힘을 발휘한다. 자신이 끌고 들어온 문제라면 상대보다 공격과 방어가 능수능란할 수밖에 없다. 자기 위주로 짜인 판에서 훨훨 날 수 있는 것이다.

코드 선점으로 덕을 본 대표적인 인물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빌 클린턴은 대통령 후보 시절, 90년대 초 미국이 겪던 경기 침체를 최고 화두로 설정하며 대선 기간 내내 경제 문제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가 내세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이 언급되면 언급될수록 부시는 경제 정책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견고해졌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의 경제 공세에 발목 잡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재선에 실패했다. 코드 선점을 훌륭히 구사한 남편과는 달리 힐러리 클린턴 현 미국 국무장관은 상대방에게 코드를 선점당해 오히려 초반 기세를 빼앗기는 실책을 범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시절부터 대통령을 꿈꿔온 ‘준비된 대통령’이었고 풍부한 정치 경험에, 지지기반도 탄탄했지만 햇병아리였던 오바마 후보가 내세운 ‘변화’ 코드에 압도당하자, 신선미라곤 없는 기성 정치인이라는 인상에 갇혀, 민주당 대선후보를 오바마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코드를 점령하는 일은 판을 누구 위주로 짜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이나 위험성도 다분하다. 요즘 같은 대불황 시대에 루즈벨트와 레이건 같은 지도자가 코드 선점의 기술을 충실히 구사한다면 한 나라를 구제할 수 있는 ‘약’이 되겠지만 영악한 폭군이 코드를 거머쥐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탈이 난다. 군사독재 시절 ‘반공’ 코드가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과 결합하여 반대파 숙청의 도구로 활용된 것처럼 말이다.

역사적으로 코드 점령을 잘 활용했다면 이로웠을 사례들이 제법 많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테러전을 수행하는 자세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극렬 테러 분자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과정에서 ‘이슬람 무장단체’를 적이라 명시했고, 이라크·이란이라는 국가 전체를 악의 축으로 지정하여 맞서 싸울 것을 천명했다. 이슬람권에서 반미 세력이 싹트고 급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활개 칠 명분-미국이 이슬람을 짓밟으려 한다-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만약 부시 대통령이 테러범들을 ‘이슬람주의자’가 아닌 ‘폭력적 광신도’로 정의 했다면 이슬람 신도 전체를 적으로 돌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테러범들을 정서적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시는 적을 규정짓는 데 있어 좀 더 현명해야 했다. 민감한 종교 문제를 전면적으로 부각한 것이 필요 이상으로 적을 양산하게 했다.

요컨대 코드를 점령하는 것은 상대방을 내 페이스로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멍석을 내 쪽으로 깔아놓는다고 반드시 이긴다는 법은 없다. 위기의 시대에 집권하여 각종 개혁에 대한 명분이 충분했던 오바마는 매디케어, 매디케이드, 부자증세 등의 현안에 반대파보다 한발 앞서 정당성을 부여할 기회가 얼마든지 많았다. 애초에 ‘코드 점령’으로 대통령이 된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집권 내내 타협적 태도로만 일관하다가 애초의 구상대로 밀고나간 법안은 아무것도 없고 현재는 재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코드를 점령해도 밀어붙이는 것은 수월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