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딱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1749년에 태어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작품으로 그가 들려주는 슬픈 사랑이야기다. ‘베르테르’라는 한 남자,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로테’ 그리고 그 여자의 약혼자 ‘알베르트’, 얽히고 얽힌 이 관계에서 베르테르는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200년도 더 된 책이 첫 사랑을 다시 만난 듯 설레는 기분과 가슴 먹먹한 슬픔까지 전해준다. 책의 시작과 끝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주 《아주 오래 된 취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소중한 벗에게 전한다.



2011년 11월 23일

 흔히 봄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야말로 사랑을 표현하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꽃이 떨어진 자리에 밟히고 밟혀 생긴 한없이 붉은 자국이 어쩌면 지독하게 눈물겨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친구여! 한 줄 멋진 문장으로 이 책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날 용서하게.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몰래 읽는 기분이 들어서 숨죽여 읽을 수밖에 없었고, 읽는 내내 꽃의 붉은 빛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아팠네.

 1771년 5월 4일의 편지를 시작으로 베르테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어, 아마 그 감정을 ‘사랑’이라 할 수 있겠지. 6월 16일, 괴테는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끝내 그녀에게 찾아갔다.’ 또 그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 ‘로테’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말하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매혹적인 정경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친구여, 나도 사랑에 빠진다면 열일 제쳐두고 그 사람만을 향해 갈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내게도 아직 이런 낭만이 남아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것만큼 슬픈 일은 없겠지. 베르테르는 그 기분을 7월 8일 아주 진솔하게 얘기했어. ‘나는 로테의 눈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내게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이 내게는 쏠리지 않았다. 드디어 마차는 떠나버리고 내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괴었다.’ 아, 눈물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 있었네. 눈물이 슬픈 이유 역시 여기 있었어. 한 없이 바라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그 때, 비로소 눈물이 흐르지. 친구여, 자네도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던 적이 있던가.

 친구여, 베르테르는 진짜 멋진 남자였네. 자네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애인’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요즘 정서대로라면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을까’하고 밀어붙이겠지. 그러나 베르테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7월 30일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그러니 나는 떠나야겠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남자인가. 그러면서도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남자인가. 그는 이렇게 아픈 사랑을 8월 21일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나는 어두운 앞날을 바라보며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한 문장으로 표현했지. 친구여, 결국 베르테르는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네. 아니, 어쩌면 잊었다는 말로 자신을 속이려 했을지 몰라.

 1772년 9월 3일 그는 바보 같은 자신을 질책하고 말아.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라고 말하지. 그래, 자네도 알고 있지. 이 말 속에 한 점의 ‘분노’도 없다는 것을. 베르테르는 어쩌면 참 어리석은 사람이야.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감정을, 그 사랑을 12월 6일 ‘그녀의 모습이 내게서 영 떠나질 않는다!’는 이 한마디 말로 표현을 하지. 여기에 그쳤으면 좋겠지만, 그는 더 이상 ‘사랑’만을 키울 순 없었어. 그래서 ‘불행’을 함께 키우게 되지. 12월 12일 베르테르는 자신의 심정을 ‘못 견디겠다! 정말 못 견디겠다!’로 표현하지. 이 두 마디에 그의 울분을 다 담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다 담을 수 없었나보네.
 
 12월 21일 그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 로테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남기지. ‘드디어 결심을 하였습니다. 로테,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스스로 참고 견디어냈다는 것, 당신을 위해서 스스로 몸을 바쳐 희생하겠다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절망이 아닌 당신을 위한 희생이라고 말하고 있네, 친구여,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1772년, 화약의 불빛, 총소리, 그리고 거룩한 자살로 끝이 나는 희곡 『에밀리아 갈로티』가 놓여진 그의 방, 이것으로 그는 정적을 받아들이게 되지.

 이 소설을 화창한 봄날이 가져다 준 따뜻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붉은 꽃물 자국이 선명한 사랑이 있네. 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래서 아끼고 있어. 오늘날 내가 그리고 자네가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품을 수만 있다면, 난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