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만에 서울대가기’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새 프로그램이 케이블TV 채널인 tvn을 통해 어제(10월25일), 2회째 방송 되었다. 사전 광고를 통한 호기심 유발이 적중했는지, 이 프로그램은 케이블 채널의 한계에도 불구, 첫 방송부터 1.8%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위 ‘대치동 학원 강사’들이 고액을 받고 부유한 계층의 자제들에게만 알려주던 성적 향상 비법을 모두에게 공개한다니. 대한민국 상위 1%만이 알고 있었던 최강의 입시 비법을 전국 60만 수험생들에게 까발리겠다는 이 발칙한 프로젝트는 과연 학생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화제가 되고 있는 케이블 채널 tvn의 새 프로그램 <80일만에 서울대가기>
(출처 :
http://chtvn.com/VR/sundayten)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일어나는 현실

이 프로그램에서 강조한 것과 같이,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부가 세습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메가스터디를 대표로 한 저렴한 인터넷 강의 사이트, EBS 인터넷 수능 강의 등을 통해 많은 입시 정보들이 균등하게 주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잘난 대치동 족집게 선생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기본적으로 학벌이라는 자본이 개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여유가 있는 상류층들은 자녀들의 입시를 위해서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강남 8학군’, ‘외고’, ‘자사고’의 부자 아이들이 대입 문턱에서 가난한 공부벌레를 앞지르게 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우습지만은 않은 우스갯소리 중의 하나가 있는데, 바로 학교 모임을 가진 후 귀가할 때의 풍경에 관한 것이다. 지하철 2호선에 위치한 서울대입구역에서 헤어지는데, 서초, 강남, 송파로 향하는 방향에는 아이들이 그득그득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더라’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이것이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 일일까? 글쎄, 여기는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아무리 ‘멍청한’ 아이라도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대한민국이다.





발칙한 프로그램에 보내는 한 가지 커다란 우려

그래서 말인데, 소위 ‘대한민국 1%’의 아이들만이 알고 있는 공부의 비법들을 대치동 강사들이 전 국민에게 전격 공개한다는 취지 그 자체에는 대체로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비법’의 공개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최소한 교육의 빈부 격차라는 상황을 해소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80일만에 서울대가기’를 지켜본 결과,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서게 된다. 바로 그들의 목표와 프로그램의 취지라는 것이 진정성을 띄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자극적 소재를 통해 상업적 성취를 거두겠다는 술수를 가리기 위한 방어 수단일 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방송 첫 주, ‘한 달 만에 50점에서 250점 올리는 비법’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내용은 6.9.30이었다. 먼저 6.9는 6월,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가 수능에 직결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30은 30일 동안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필살 비법을 담은 동영상 강의를 전격 무료 공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방송 한 시간여를 끌면서 공개한 내용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많은 수험생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출문제 중요한지 모르는 수험생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사실 온라인 동영상 강의는 tvn에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많은 학생들이 무료로 시청하고 있다. 심지어 tvn에서 제공한 동영상 강의 자체를 확인한 결과, 공부법이나 성적 올리는 비법에 대한 특별한 강의가 아닌 일반 학습용 동영상 강의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2회가 방송된 어제 공개된, 수리/외국어 영역의 점수를 끌어올리는 비법도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이 질이 이 정도에 그친다면, 수능이 4주 남은 시점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수험생들을 혼란스럽게만 만들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서 대치동 족집게 강사로 소개된 강사들이 모두다 ‘청솔학원’의 강사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프로그램의 질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발칙한 체 시작했으면, 처음엔 그것이 ‘척’이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발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 방송되었던 유사한 프로그램인 MBC의 ‘공부의 신’도 공신들의 비법을 공개한다는 홍보로 처음엔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결국엔 뻔하디 뻔한 시청률 높이기용 기획이었다는 비난을 받으며 폐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 ‘80일만에 서울대가기’도 결국 그런 식으로 끝난다면, tvn의 제작진들은 학생들 개개인의 인생이 걸려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학생들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nate.com/view/20081014n06923)


수험생들은 왜 눈물을 흘려야만 했는가

사실 ‘80일만에 서울대가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백비급’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공부 비법보다는,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한 학생들이 흘린 눈물과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였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혼자 공부를 해온 학생. 꿈은 없는데 공부만 했다는 학생, 과외로 돈을 발라가면서 수동적인 공부만 했던 학생. 아무래도 대학엔 가야겠다 싶어 고3 여름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 각자의 삶을 살아 온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들이 은유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이지만, 그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학업 성적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재단 받아왔던 아이들이다. 자신의 꿈이라는 것은 존재치 않고, 그들의 꿈은 성공의 문턱에 들어서기 위한 첫 단계인 ‘좋은 대학’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동적으로 ‘시켜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꿈은 없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현실을 알기에, 공부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고, 그래서 성적이 안 오를 때마다 좌절하는 학생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20대가 되어도 특별한 꿈은 없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20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의 기능, 목적 중의 하나인 ‘선발과 분배’를 편의적으로 하기 위해 고안된 체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필기 위주의 시험을 잘 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방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로 학생들은 ‘명문대 갈 학생’, ‘인서울 정도 학생’, ‘공부 못하는 학생’ 따위로 분류되어 인식되고, 자존감도 그런 구분 아래서 형성되게 된다.

현재의 상대평가식의 줄 세우기 하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게 되기 마련이다. 500점 만점에 몇 점을 받았냐는 숫자 하에서 학생들은 꿈도 자존심도 잃으면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이며, 이러한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 한은 ‘교육 평등’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실상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쉽게 고쳐질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80일만에 서울대가기’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눈물과 상처,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간과해서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