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오늘, 창원의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노동자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통한 재산 가압류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사측은 파업 노동자 89명에 대해 총 65억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노동자들의 급여와 부동산을 가압류했다. 배달호씨가 죽은 후 월급통장을 보니, 가압류로 인해 한 달 월급으로 25000원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돈도 문제였지만, 배달호씨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동료들의 외면이었다. 사측은 ‘손배·가압류’를 노조파괴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노조에 들어가 파업을 하면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료들이 배달호씨를 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인간관계가 파탄 난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이 단순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후에도 기업이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노동자를 상대로 한 기업의 ‘손배·가압류’ 금액은 총 700억 원이었다. 사측의 민사상 ‘손배·가압류’는 노동쟁의행위 자체를 막아버리고, 노조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작업조건이 열악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선뜻 파업에 나설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또한 배달호씨의 분신자살 이후에도 현실에 절망하여 죽음을 택하는 노동자들은 늘어만 갔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김주익, 곽재규, 박창수의 죽음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이후에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등으로 18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은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과, 무분별한 정리해고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현대차 울산 매암 공장에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신 모 현장위원이 분신을 해서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노조측은 “신씨의 분신 시도는 회사 측의 과도한 작업현장 통제와 관련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9년 전에 비해 달라진게 없는 암담한 노동 환경이, 또 한명의 노동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배달호씨의 9주기를 맞아,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1인당 소득이나 GDP순위등의 경제수치로써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는 것만이 중요한 과제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무시당하고, 노동자가 절망에 빠져있는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경제발전의 주역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노동자들을 더 이상 막다른 길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부디 앞으로는 배달호씨 같은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