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교복을 입은 남학생 세 명이 A마트에 갔다. 과일을 진열해놓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데 마트 직원이 학생들을 불러 세운다. “학생들은 책가방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다. 학생들은 멈칫하지만, 곧 그들 중 하나가 대표로 물건을 사오기로 했다. 가방을 맨 학생 둘은 친구가 벗어놓은 가방을 들고 입구에서 기다린다. 그 사이 가방을 들거나 멘 손님들이 여러 명 더 들어왔지만, 누구도 가방을 두고 가라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기들만 적용받은 지침에 항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마트 직원에게 영문을 물었다. 직원 김모씨는 낮은 목소리로 ‘도난사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왜 학생들만 가방을 맡겨야 되는지, 다른 예방법은 없냐고 되묻자 직원은 학생들 배낭가방이 크고, CCTV나 매장 안 거울로도 발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야기를 할수록 마트(해당 매장)에서 학생들을 막연하게 의심하고 다른 성인 손님들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학생들도 마트를 방문하는 손님 중의 하나인데, 정당한 근거 없이 도둑질할 가능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이 매장이 도난 사고를 제대로 방지하려면, 큰 가방을 든 모든 연령대의 손님에게 동일한 지침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항을 입구에서 미리 공지로 알려야 한다.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다른 매장에서도 같은 제재를 하는지 본사 누리집에 문의를 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머리말의 답변이 왔다. A마트는 기본적으로 “개인소지품을 물품보관함에 보관하도록” 하며,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불편해하는 고객에게는 입구에서 패찰을 줘 잠시 맡아두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학생들에게만 가방을 맡기도록 한 행위는 그 점포만의 규정이었거나 매장 직원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해당 매장에서도 그런 조치는 더 이상 행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보름 만에 의혹이 풀렸으니 다행이다.

  이 사안을 끈질기게 확인한 것을 기자의 과민반응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안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장면이 매우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당해야 했던 크고 작은 부당한 대우들이 많았다. 처음 보는 어른에게 아무 이유 없이 분풀이 대상이 되거나, 줄을 한참 서 있었는데 뒤로 밀려나거나, 금방 구매한 물건이 유통기한이 지난 걸 알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한 경험 등. 그 날 학생들의 모습은 곧 나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제대로 따져 묻거나 상황에 반기를 들지도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 했던 불쾌하고 억울한 감정들이 다름 아닌 ‘인권 침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한참 뒤의 일이다. 

  국가인권위에서는 “법인, 단체, 또는 사인(私人)에 의하여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그 이용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인권 침해 조사 대상으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은 여성, 이주노동자와 함께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 구분되어 인권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요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청소년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인권’은 있다. 그건 어리니까 잘 모르거나 참아야 되는 게 아니라, 나이나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와 서울시의 ‘학생인권 조례’ 제정은 한국 사회의 점진할만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어린이 노동 착취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어린이날’을 선포했듯이 그 당시 매우 논쟁적이었던 문제가 지금 현재는 아주 당연한 개념이 된 것이 ‘역사’다. 그리고 우리 인류사는 모든 자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말 했듯이, 다만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만큼 상대를 대하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2012년에는 부디 서로의 인권과 인격에 상처 주는 일이 없기를, 인권 침해 사건이 예년보다는 줄어들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