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동 4가 남일동 건물 위에서 울려 퍼진 고함이다. 불길 속에서 그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었고, 끝내 그 한 마디는 철거민들의 유언이 되었다. 이 말은 철거민들의 권리를 상징하는 한 마디가 되어, 책 제목으로, 또 연극의 제목으로 역사에 새겨졌다. 

오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사람이 있다’던 용산 남일동 건물과 그 일대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다’. 그 일대는 텅 빈 공터가 되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철거민 5명,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서둘렀던 ‘작전’이었지만, 개발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정당한 절차 없는 무리한 사업 추진이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출처 : 용산참사3주기 추모준비위원회

 

15일 용산참사 3주기 추모준비위원회는 금주를 용산참사 3주기 추모 주간으로 선포하며 구속된 철거민들의 석방과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이에 정치권도 발을 맞췄다. 18일 여야 국회의원 33명이 용산참사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강제 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것.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숙의를 거쳐 탄생한 이 법안은 철거민의 최소한의 권리를 담고 있다. 원주민의 ‘재정착’ 개념을 명확히 정의 내렸고, 재정착 대책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폭력행위가 일어날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으며, 일출 전과 일몰 후, 공휴일, 겨울철, 악천후 등의 퇴거 금지시기 역시 법안에 명시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용산에서의 참사 이후에도, 서울 곳곳에서 강제 철거는 이어지고 있다. 명동에서, 아현동에서, 상도동에서 수많은 철거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간다. 언제든 강제 철거가 될 수 있는 곳이 300곳이 넘는다. 정부의 입장 역시 변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의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오사카 총영사로 ‘영전’되었고,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확정 판결한 양승태 판사는 대법원장이 되었다.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인사다. 언제든 제 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출처 : 민중의 소리

 

그래서 강제퇴거금지법은 꼭 필요하다. 개발을 하지 말라는 법이 아니다. 필요한 개발은 하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하자는 법이다.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퇴거 금지 시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이다. 철거 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났을 경우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규정은 용역의 폭력을 막기위한 너무나도 당연한 조항이다. 또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정착’ 개념 역시 개발 이후에도 거주민이 개발사업 시행 전과 동등한 수준의 거주나 일을 유지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다. 굳이 따로 규정해놓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인 것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3년 째 공터로 남아 있는 남일동 건물 일대 만큼이나, 변한 건 별로 없다. 정부의 입장도, 철거민의 눈물도, 모두 그대로다. 이제야 법률을 통해 하나의 변화가 생기려 하는 것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던 남일동 건물은 이제 없다. 그러나 서울에는 아직도 ‘사람이 있다’. 우리가 용산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또 18대 국회가 이번 강제퇴거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