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은 서구예술의 전통 자체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고 있으며, 다수의 대중이 즐기지 않는 예술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듯 말하고 있다. 진보세력 내에서 '문화평론가' 내지는 '문화컨텐츠 기획자'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의 예술관이 이 정도라면 비참할 따름이다. 클래식은 현대 대중음악의 중요한 음악적 기반이 되고 있으며, 클래식으로 일컫는 서구 고전음악은 몇 백년을 견뎌오면서 고유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가치를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은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클래식은 대중과 동떨어진 음악이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않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없는 것일까? 오히려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상위계층의 음악이라고 여기는 클래식을 대중들도 즐길 수 있게 ‘음악 복지’, '문화 복지' 의 차원에서 서울시향에 더욱 투자하는 것이다. 부자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저렴하거나 또는 무료로 ‘좋은 클래식 연주’를 들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시장경쟁을 통하여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클래식 연주는 시장경쟁 속에서 나오기 힘들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에 지원해주는 문화 정책이 실현돼야 한다. 그래야 상품으로서의 예술만이 득세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이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예술적 가치를 가진 음악들, 즉 국악이나 인디음악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시장 경쟁’을 지양하고, 문화의 획일화를 막는 것은 진보세력이 평소에 추구해오던 일들이 아니었나. 그런데 정작 진보세력은 클래식을 고급계층들이 향유해왔던 음악으로 치부하면서, 클래식에 대한 반감만 부추기고 있다.
진보세력은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들이 즐겨 부르던 음악인 민중가요는 아예 그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얼마 전 민중의소리 산하 계열사인 미디어보프가 저작권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전국농협노조에 민중가요 편집음반을 제작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일이 있었다. 주문자인 전국농협노조가 저작권에 대해서 문의하자, 미디어보프 쪽에서는 ‘관행이라 상관없다’며 저작권은 전혀 염두하지 않고 편집음반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결국 민중가요 음악인들이 5일 성명서를 내고 미디어보프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노래패 '꽃다지' 공연 ⓒ 꽃다지
음악인들은 “창작자의 의도가 실종되거나, 음악인들의 경제기반이 악화되는 등의 문제점 때문에 2000년도에 민주노총 문화국과 문화단체들의 간담회를 통해 노동조합에서 임의로 편집음반을 제작하지 않기로 결의 했었다.” 고 말한다. 그 이후 음악인들은 편집 음반을 만든다고 소식이 들리면 2000년도의 간담회 결과를 이야기 하면서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디어보프처럼 아무런 양해도 없이 편집음반을 만들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더구나 이번 사건에 대한 미디어보프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음악인들이 민중의 소리에 공식사과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후, 두 달이 지나서야 “편집 음반은 미디어보프가 만들었다.” 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화가 난 음악인들이 성명서를 낸 뒤에야 미디어보프는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차이가 지배구조를 고착화시키고, 계급을 재생산한다고 말한다. 음악, 영화, 책, 그림 등이 ‘객관화된 문화자본’으로서 문화자본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부르디외의 말에 따르자면 만약 이러한 문화자본이 공평하게 분배가 안 되고, 경제격차에 따라서 접하게 되는 문화예술 컨텐츠(교육적인 측면도 포함한)의 수준과 양이 차이 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불평등은, 국가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양질의 문화를 똑같이 제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진보세력이 문화예산을 늘리자고 주장하면서, ‘문화 복지’의 필요성을 역설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지점이다. 그런데 정작 진보세력은 '문화 복지' 주장은 고사하고 예술을 투쟁의 대상 (클래식) 이나 투쟁의 도구(민중가요)로 삼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오히려 보수신문인 중앙일보에서 먼저 문화예술의 가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7일 오피니언에서 “문화는 밥을 먹여준다 재난의 상처도 치유한다.” 는 주제의 글을 싣는다. “지진 피해를 입은 가운데서도 시간이 조금 지나니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더라. 역시 문화는 삶에 본질적인 것.”이라는 일본 문화청 장관의 말을 빌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지진으로 다친 마음 어루만지고, 범죄자가 될 뻔했던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도 문화의 힘이다.” 라며 문화 예산을 더 늘리자는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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