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오후 2시, 이화여대 ECC(이화 캠퍼스 복합단지) 내의 한 강의실에서 CBS 최철 기자의 강연이 있었다. 이번 강연은 최철 기자가 낸 책 <기자수업>을 재밌게 읽은 20대 대표 언론 <고함20>측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날 강연에는 28명의 <고함20>기자들이 참가했다.

언제나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자수업>을 닫는 마지막 문장이다. 용기내어 강연을 부탁드릴 수 있게 만든 문장이기도 하다. 강연은 ‘소통’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로 강연을 연 최철 기자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변한 언론환경, 또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특징과 기사의 중요성 등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그 후 시간은 모두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졌다. 대학생 시절 한 번도 현직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최철 기자는,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조금이라도 <고함20>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말해주려 했다. 정치현안이나 '나꼼수' 관련 문제 등 다서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 많았지만, 최철 기자는 어떤 질문도 '노 코멘트'하지 않고 사견임을 전제로라도 답변을 해주셨다. 

위 사진은 12월 28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열렸던 특강의 사진으로 본 강연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아래는 강연 중 있었던 질문과 답변들의 요지.


Q. 만약 기자님이 취재를 잘 할 수 있는 ‘취재력’과 글을 잘 쓸 수 있는 ‘필력’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A. (웃음) 둘 다 기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충분한 취재 없이 글을 쓰는 것은 정말 힘들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조간신문의 마감은 오후 4시 정도다. 그런데 오후 3시 경부터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1시간 만에 정확한 팩트를 찾고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취재원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 기사의 형식 역시 어느 정도는 정형화 되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잘 쓰게 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굳이 고르라면 ‘필력’보단 정확한 취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택하겠다.

Q. 취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고함20>의 경우 아직 매체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고 전원이 20대로 구성되어 있어 취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혹시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A. 사실 CBS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언론이 아니다보니…. 결국 매체의 이름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고함20>을 보니 책도 내고 나름대로의 대표성도 있는 것 같다. 깔끔히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들에 돌리는 것도 방법의 하나겠고, 기성 언론이 인터뷰하지 못하는 분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만약 납치를 하든 인맥을 통하든 안철수 단독 인터뷰를 <고함20>에서 따냈다고 해봐라. 기성 언론은 어쩔 수 없이 그걸 받아쓸 수밖에 없다. 또 <고함20>의 구성원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단체’의 힘을 이용하라. 한 명의 인맥보다는 스무 명의 인맥이 낫지 않겠나.

Q. <나꼼수> 집회 현장에서 MBC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MBC기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기사를 써도 나가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는데, 실제 편집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그림을 그리며)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언론사 조직은 사장-보도본부장-국장-부장-차장-평기자로 이루어져있다. 차장 이상이 데스크다. 책상에 앉아서 근무한다는 의미의 데스크(desk)다. 데스크는 기사가 나갈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만약 기사가 언론사의 사풍과 맞지 않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때 기사는 '킬' 될 수 있다. 다만 언론사의 성향과 관련 없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 기사가 킬 될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의 비리를 고발한 기사가 있는데, 팩트도 완벽하고 흠잡을 곳이 없는 기사다, 그런데 기업이 광고와 기사를 바꾸자는 제의를 해 언론사는 광고를 받는대신 그 기사를 킬 시킬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자는 기자협회나 언론사마다 있는 공정보도위원회를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나름대로의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Q. <기자수업>을 읽으며 ‘마와리’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없어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마와리는 일본어인데 ‘돈다’는 뜻이다. 갓 언론사에 입사한 수습기자들이 맡은 라인의 경찰서들을 돌며 교육을 받는데 그래서 ‘마와리(돈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밤 12시 경부터 마와리를 돌아 새벽 2시쯤에 보고를 한다. 보고가 한 번에 끝날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 더 돌면 약 새벽 3시 반이다. 아침에도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보고가 한 번에 끝날 수 없으니, 새벽에도 경찰서를 두 번 이상 돌아야 한다. 그러려면 새벽 5시 쯤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런 생활을 약 한 달간 해야 한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장단이 있는 것 같다. 거칠고 무식할 수도 있겠지만 마와리는 일일이 취재하는 법을 가르쳐줄 순 없는 노릇이니 몸으로 배우라는 취지의 교육이다. 다만 그 한달을 못 견뎌서 기자를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만약 마와리가 없었다면 이들이 더 큰 기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부분에선 조금 안타깝다.

Q. 기자들은 특종에 민감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특종을 따낼 수 있는 취재 노하우가 따로 있을까요?
A. 사실 발로 뛰어서 나오는 특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특종은 제보에서 나온다. 이건 취재원이 만들어주는 특종이 많다는 소리다. 때문에 취재원은 기자의 자산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나도 기자생활 초기엔 명함을 받으면 뒷장에 그 사람의 외모나 특징 등을 메모해놓기도 했다. 만약 기자를 그만두었을 때 연락이 지속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을 넘는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Q. 혹시 기자로 생활하시면서 갖게 된 직업병이 있다면?
A. (잠시 생각하다가) 딱히 직업병이랄 것까지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된 것 같다. 말을 들으면 ‘이건 사기다’라고 느낄 수 있는 감이 늘어났다는 정도? 그리고 직업병까지는 아니지만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언론사는 술에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기 할 일만 하면 숙취가 남은 채로 출근해도 뭐라 하지 않는? 그래도 낮술은 하지 말아야지…(웃음)




기자는 힘이 세다, 그러나…

기자는 힘이 세다. 자신의 글을 수십만의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최철 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는 바쁜 일반인들 대신 현장에 직접 가서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젊은 저널리스트들의 집단, <고함20>에게 큰 교훈이 되는 말이다. 최철 기자는 <고함20>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광주까지 취재를 떠났다가 바로 올라오셨다고 했다. 후배 기자들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주신 최철 기자님께 늦게나마 감사를 전한다.


참고 : yes24에서 진행한 최철 기자 특강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7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