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의원은 자신이 사악한 호랑이라는 걸 몰랐을까. 강 의원에겐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이 전래동화 <해와 달>의 오누이가 잡은 동아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강 의원이 마지막으로 잡은 건 썩은 동아줄이었다. 박주신 씨가 공개신검을 받고 의혹을 해소하면서 강 의원의 정치생명은 끊어져 버렸다. 동화에서 호랑이가 잡은 썩은 동아줄처럼 말이다.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출마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지만 그가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지는 의문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사생활까지 침해한 강 의원은 정계를 떠나 법적 처벌을 기다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강 의원의 의혹 제기가 전적으로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까운 병원을 두고 먼 곳까지 가서 검사를 받았다는 점과 진단서를 준 의사가 병역비리를 저지른 경력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의혹을 제기할 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박 시장 측의 대응도 의혹을 부풀리는데 한 몫 했다. 일찍이 병무청의 기록을 공개하겠다는 의사만 밝혔어도 사건이 지금처럼 일파만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강용석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어물쩍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만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현 정부 들어 검증받지 않은 공인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공인이 의혹을 검증받고 스스로 해명해야 하는 이유다. 공인의 자녀가 검증의 대상이 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이 후보는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인해 많은 표를 잃고 낙마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과정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 적용이 공인이 아닌 개인과 차이 없이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일명 <나경원법>이 제정되면서 단순한 의혹 제기의 통로조차 막혀 버렸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대한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나경원법>과 충돌하는 <정봉주법>은 국회에서 계류하는 있는 것이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다.

나경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 노컷뉴스

 
공인‧공공기관에 대한 감시와 검증의 필요성은 법적인 차원에서도 인정된 것이다. 법원은 “정부나 국가기관이 형법상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이 <PD수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PD수첩>의 손을 들어줬다. 유럽에서도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가 독일의 한 연예주간지를 사생활침해로 제소했지만 패소한 것이다. “공주는 공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국도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 사건을 제 2의 타블로 사건으로 국한시키는 걸 경계해야하는 이유다. 타블로 사건처럼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위축시키데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을 빌미로 다른 정치인들을 비롯한 공인에 대한 의혹 제기를 그냥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엔 다른 기준이 적용 된다는 건 우리보다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