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이다. 지갑을 잃어버린 게 말이다. 모두 찾긴 찾았다. 하지만 두 번은 현금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갑은 잃어버린 곳과 꽤 먼 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가지도 않았던 광화문 우체국에서 지갑이 집으로 보내진 적도 있다. 학교 도서관 분실물보관소에서 지갑을 찾고 고이 들어있던 4만원을 봤을 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정범 씨(27)는 눈 먼 장님이 됐다. 임 씨는 “길을 걷다 지갑을 떨어뜨린 걸 깨닫고 가던 길을 되돌아가 지갑을 찾아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근처를 맴돈 지 몇 차례 지나서야 가까이 있던 건물 벽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던 지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갑이 왜 가지도 않은 곳에 있을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지갑 속에 있던 현금 3만여 원이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지갑을 떨어뜨린 곳과 임 씨가 그것을 깨달은 곳과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느 누군가가 지갑을 발견해 현금을 빼고 그곳에 던진 것이다.



전국 각지의 분실물센터, 하루에도 많은 지갑들이 이 곳을 찾는다. 경찰서에 맡겨진 유실물들을 모아 주인을 찾아주는 경찰청유실물종합관리시스템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9일 하루에만 55개의 지갑이 등록됐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비롯한 다른 곳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하루에 잃어버리는 지갑은 55개를 훨씬 넘는다는 얘기다.

잃어버린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릴까.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01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달러에 해당하는 현지 돈과 신분증, 연락처 등을 넣은 지갑 1100개를 전국 각지에 놓고 왔을 때 한국의 회수율은 70%였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3개국에 불과했다. 지난해 KBS에서 방영된 <사회적자본>팀의 조사에서는 10개 중 6개가 회수됐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문제는 회수되지 않은 40%다.

40%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온전히 분실물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떻게든 지갑을 찾더라도 무언가 하나는 없어지는 것이다. 특히 현금이 사라지는 건 다반사다. 김진석 씨(26)는 잃어 버렸던 지갑을 학교 분실물센터에서 찾았지만 들어있던 현금 5만여 원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김 씨는 “현금은 기대도 안 했다”며 “신분증, 신용카드 등을 재발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라도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잃어버린 지갑에서 현금이 그대로 들어있길 기대하지 않는 사람도 생긴다는 얘기다. 현금이 고스란히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보단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문제다.

돈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지갑을 꼭 찾아 주는 것도 아니다. 홍성미 씨(50)는 버스회사 분실물센터에서 현금이 쏙 빠진 지갑을 찾았는데 “발견했을 때부터 현금은 들어있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결국 누가 현금만 빼간 게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영수 씨(28)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지갑에서 현금만 빼고 책상 아래로 밀어 넣는 것을 목격했다. 김 씨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법적 차원 이전에 양심의 문제이지만 법으로도 제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본래 소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분실물이나 그 일부를 갖거나 빼돌리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절도죄로 법적 처벌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황상 범인을 찾기 힘들거나, 절도 액수가 상대적으로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신고를 하는 일도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갑을 되돌려 주냐 마냐가 나뉘는 것을 공감능력에서 찾는다. 분실물에 손을 대는 건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주장이 가능한 이유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자본>에서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를 배려하기 때문에 지갑을 찾아 주는 것”이라 말했다. 우리는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