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과 북한인권이 보수 대학생 단체 출현 계기... 가치의 다양화 측면에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대학생은 보수화됐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혹자는 2007년 대선 당시 20대의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예’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반면, 반값등록금 투쟁과 2040세대를 언급하며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대학생의 이념변화는 줄곧 지적됐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대학생=진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수 대학생 단체의 급증

최근 각종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보수화가 두드러진다. 서울대학교 학보사인 ‘대학신문’이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성향이 ‘보수적’이라고 밝힌 학생은 2000년에 13.2%, 2002년에 17.2% 2005년에 27.6%, 2007년에 40.5%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대학신문’이 입수한 2009년 실시된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의 여론 조사도 마찬가지다. 홍두승 교수가 서울대 학부생 660명의 정치성향을 조사한 결과 진보 42.3%, 중도 29.7%, 보수 28%등으로 나와 7년 전보다 보수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2007년 서울대 등 서울지역 7개 대학신문사가 대학생 2087명을 대상으로 ‘대학생의 정치의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 7개 대학의 평균 보수층은 35.1%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대학생의 보수화가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전부터 보수적 의식을 갖고 있던 대학생들은 있었지만, 결집되지 못했을 뿐이란 것.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1998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진보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보수 대학생들이 조금씩 결집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후반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도 20대가 모이는 것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통합진보당 산하 새세상연구소의 손우정 상임연구위원은 보수세력의 노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언급했다. 2002년 대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으로 젊은 세대를 꼽았고, 이후 전경련을 비롯한 많은 보수 단체들이 20대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대 보수단체의 등장이란 것. 또한 대학교내 진보세력의 위축도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됨에 따라 대학교 내에서 진보적 학생회가 힘을 잃어간 것도 20대 보수단체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설명이다. 손우정 상임연구위원은 “진보적인 학생회의 힘이 위축되면서 보수 대학생들의 소리가 높아졌고 보수 대학생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생의 보수화를 토대로 수많은 대학생 보수단체가 출현했다. 대학생의 보수화가 뚜렷해지는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New 또 다시’,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 ‘바른 사회 대학생 연합’, ‘청년 자유 연합’, ‘한국대학생포럼’,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 등 수 많은 보수 대학생 단체가 나타난 것.
 

해를 거듭하면서 이들 단체에 가입하는 대학생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 ‘한국대학생포럼’의 경우 2011년 연초 1400명이던 회원수가 6300명까지 늘었다. ‘New 또 다시’는 초기 150명이었던 회원수가 1년 새 9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북한 인권 학생연대’도 회원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이제 300명이 넘는 오프라인 회원과 800명 이상의 온라인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대학 내 편향된 정치이념에 반발

보수 대학생 단체의 당사자들은 광우병 파동과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단체 설립의 계기로 꼽았다. 한국대학생 포럼 윤주진 전 회장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거짓말과 루머에 속아 넘어갔다. 아무런 비판적 판단도 사고도 없었다. 대학생 사회가 무분별한 정치 투쟁에 휩쓸리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고 단체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New 또 다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New 또 다시’ 이승준 기획국장은 “광우병 파동 당시 무분별한 정치 선동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도 주요 계기 중 하나였다.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 신보라 대표는 북한 인권문제에는 침묵하지만, 미국에 대해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여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학생인권연대’ 역시 북한인권을 금기시하던 상황을 탈피하고 북한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대학 내 편향된 정치이념에 대한 반발도 보수대학생 단체의 출현을 가속화시킨 주요 요인이 됐다. 그간 대학생들 사이에선 대부분의 정치적 사안에서 진보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왔다. 이로 인해 보수 성향의 대학생들은 제대로 의견을 내기조차 힘들었다.

 대학생 보수단체의 출현을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시각은 복잡하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가진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 그 정치적 신념이 꼭 진보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가진 대학생들도 적지 않다. 한성대 학생 안모씨는 “꼭 대  학생이 진보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대학생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보수를 지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냉소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류에 영합해 출현한 기존 정치 세력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굳이 자신의 성향을 벌써부터 보수로 정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성균관대 통계학과 김모군은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대학생이 벌써부터 보수를 표방한다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중앙대 정외과 강모양도 “뜻하는 바는 알겠지만, 솔직히 진정성이 보이지는 않는다고“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치사회학자들은 보수대학생들의 출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진보 대학생이 있으니까 보수대학생도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 손우정 상임연구위원은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현 상황은 가치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류석춘 교수 역시 “좌파만 있었던 이전 대학생사회는 비정상적이었다. 현재 상황은 매우 정상적”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의 보수이념이 강화됐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보수정당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함20이 여론조사기업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수치를 조사한 결과,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2000년도 16.8%에서 2001년 29.5%로 반짝 상승하는 가 싶더니, 2006년 24.8%까지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 이후, 2007년에 51%로 치솟은 이후 다시 2009년 15%로 떨어졌다. 나아가, 2011년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20대는 진보진영의 구원투수로 떠올랐을 정도로 확실한 변화에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보수화된 20대가 보수정당에 지지로까지 이어졌던 것은 2007년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상의 은사로 불렸던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간 대학생 사회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념적으로 편향됐던 것이 사실이다. 급격히 늘어나는 보수 대학생 단체들이 또 하나의 날개를 담당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